“최첨단에서 너무 먼 과거로 돌아간 거 아닌가요.”
“결국 사람을 대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로봇만 쌓아 올리기보다는….”
전시장에 들어서면 알록달록한 옷들이 도드라져 보인다. 피에로 같은 복장이다. 기하학적 도형에다 화려한 원색들을 얹었다. 단조로운 무늬와 화려한 색깔의 대비를 통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은 틀에 갇혀 있지만 생동하는 열망만큼은 강렬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작품 이름도 딱히 없다. 1번, 2번, 3번 하는 식이다. 그런데 색깔만 쏙 빼면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기 위해 쌓아올린 굳센 옹벽같다. 그 위에 얹혀진 표정들은 묘하다. 굳센 옹벽 위에서 이제는 안심하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불안해하는 것도 아니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희미한 무표정이다.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 ‘문 없는 방’ 전시에 나온 최병진(37) 작가의 작품들이다. 작가는 원래 로봇을 그렸다. 거대 사회에서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묘사하기 위해서다. 유머스럽게 표현해보고 싶어서 유아용 캐릭터 상품 같은 아기자기한 작품들을 내놨다. 작가는 세상 살아가는 일을 진지하고 엄숙하기보다 ‘놀이’처럼 다루고 싶었다. 그런데 작가 스스로가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는 너무 꾸미는 데 치중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기본으로 되돌아가자.”고 결심했다.
기본이란 것은, 없는 뭔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이 모두 주변 사람들인 것도 그런 까닭이다. 1층에 굳센 옹벽으로 쌓아올린 인물들을 그린 작품들이 있다면, 2층에는 그 인물들의 내면으로 초대하는 평면회화작품들이 있다. ‘자화상’은 물론, ‘부모’, 아내를 그린 ‘희정’, 그리고 딸을 등장시킨 ‘중얼거리는 가족’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2층 ‘에라스무스와 루터’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은 종교개혁가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루터를 기억하지만, 동시대 사람으로 에라스무스도 있었다. 작가는 에라스무스를 주인공으로, 루터를 배경으로 처리했다. 거대한 세상 속에서 단칼에 치고 나가는 것보다 때론 좌고우면도 하면서 더듬어 더듬어 나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배치한 것이다. 작가가 말하고픈 현대인의 모습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런 회색지대 안에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사각형 1번, 2번, 3번 같은 작품들을 이리저리 배치해 봤다면 어떨까.
“그렇게 해보라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배치된 것보다는 허공에 매달린 듯한 느낌이 더 좋아서 벽에 걸자고 했습니다.” 옹벽을 쌓되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은 그렇게 둥둥 떠다니고 있다.(02)730-781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결국 사람을 대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로봇만 쌓아 올리기보다는….”
‘중얼거리는 가족’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 ‘문 없는 방’ 전시에 나온 최병진(37) 작가의 작품들이다. 작가는 원래 로봇을 그렸다. 거대 사회에서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묘사하기 위해서다. 유머스럽게 표현해보고 싶어서 유아용 캐릭터 상품 같은 아기자기한 작품들을 내놨다. 작가는 세상 살아가는 일을 진지하고 엄숙하기보다 ‘놀이’처럼 다루고 싶었다. 그런데 작가 스스로가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는 너무 꾸미는 데 치중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기본으로 되돌아가자.”고 결심했다.
기본이란 것은, 없는 뭔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이 모두 주변 사람들인 것도 그런 까닭이다. 1층에 굳센 옹벽으로 쌓아올린 인물들을 그린 작품들이 있다면, 2층에는 그 인물들의 내면으로 초대하는 평면회화작품들이 있다. ‘자화상’은 물론, ‘부모’, 아내를 그린 ‘희정’, 그리고 딸을 등장시킨 ‘중얼거리는 가족’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2층 ‘에라스무스와 루터’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은 종교개혁가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루터를 기억하지만, 동시대 사람으로 에라스무스도 있었다. 작가는 에라스무스를 주인공으로, 루터를 배경으로 처리했다. 거대한 세상 속에서 단칼에 치고 나가는 것보다 때론 좌고우면도 하면서 더듬어 더듬어 나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배치한 것이다. 작가가 말하고픈 현대인의 모습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런 회색지대 안에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사각형 1번, 2번, 3번 같은 작품들을 이리저리 배치해 봤다면 어떨까.
“그렇게 해보라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배치된 것보다는 허공에 매달린 듯한 느낌이 더 좋아서 벽에 걸자고 했습니다.” 옹벽을 쌓되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은 그렇게 둥둥 떠다니고 있다.(02)730-781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2-02-06 1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