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가지 소원을 말해 보세요
하루, 이틀 캘리포니아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조바심이 났습니다. 날마다 전혀 다른 풍경과 문화를 만난다는 게 신기한 한편에 이 넓은 땅에서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멋진 장면들이 수두룩하게 남아있다는 생각이 떠올라서였습니다. 캘리포니아라는 장편 영화를 전부 보여드릴 수 없기에 ‘미리보기’ 식으로 10개의 이야기만 추려 보았습니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캘리포니아 관광청 02-777-6665 www.visitcalifornia.co.kr
1, 2, 3 시티라이트서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비트문화의 본산지다. 출판사를 겸하고 있는 서점에는 변두리 문화를 대변하는 책들이 빼곡하고, 뒷골목에는 멕시코 사파티스타 벽화가 그려져 있다
1 City Light Bookstore Sanfrancisco
워너비 보헤미안을 위한 안식처
유니온스퀘어에서 비트Beat 1) 문화의 태동지인 시티 라이트 서점으로 가려면 차이나타운을 관통해야만 한다. 도보로 약 20분 소요되는 이 길을 걷는 동안 미국 문화의 기저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이색적인 길이다. 메이시스Macy’s, 웨스트필드Westfield 등 대형 백화점으로 상징되는 소비문화의 거점 유니온스퀘어에서 출발해 자국 문화를 집요하게 지켜 온 중국인들의 집단 거주지 차이나 타운을 지나, 2차대전 이후 산업사회의 가치를 거부한 저항문화의 본거지가 한 길에서 만난다. 이 세 구역이 상징하는 가치는 미국사회뿐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둘러싼 엄존한 현실이자 갈등 요소이니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방랑하고 있는 셈이다.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광기에 가까운 열정뿐’이라고 말하는 잭 캐루악Jack Kerouack의 <길 위에서On the road>는 여전히 유효하다. 체제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고, 시대를 저항 없이 따라가기엔 1950년대 전후세대 못지않게 우리는 혼란스럽다. 한때는 금서였던 이 책보다 더욱 위험한 책들이 모여 있는 곳이 시티 라이트 서점이다. 서점은 1953년, 저항 문화를 갈망하던 예술가들과 독자들의 모임으로 시작됐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된 서점에는 문학, 예술, 인문학을 망라하는 책들로 가득하다. 공통점은 삐딱한 책들이라는 것. 서점의 뒤켠, 캐루악 거리에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사파티스타(멕시코의 무장혁명 단체) 벽화가 있는 것만 봐도 서점이 갖고 있는 ‘삐딱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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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 있는 콜럼버스 애비뉴와 브로드웨이 애비뉴 교차로 대각선에는 비트 박물관이 있다. 비트 문화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상징적인 박물관이지만 시티 라이트 서점에 비해 흥미가 떨어진다. 잭 캐루악을 비롯해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등의 비트 작가들을 기리는 전시품들과 밥 딜런, 체 게바라 등 우리에게 친숙한 반체제 인사들의 티셔츠 몇 장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50년 전, 보헤미안 문학가, 예술가 그룹의 성지였던 이곳은 여전히 예술가들의 안식처이자 고향으로 기능하고 있다. 당시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서점에서 책 여행을 즐긴 사람들은 옆에 있는 베수비오 카페에서 맥주를 즐기며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한다. 마침 일요일이었던 터라 캐루악 앨리Kerouack Alley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재활용품을 이용한 설치 미술품, 사진 앨범, 수제 의류 및 가방 등을 가지고 나온 상인들과 사람들로 골목은 북적였다. 누구도 ‘많이 파는 일’에 급급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작품을 당당히 보여주는 일만으로도 행복한 듯 보였다. 호텔이 있던 유니온스퀘어 방향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시티 라이트 서점이 그리워졌고 다음날 다시 찾아가 책 한 권을 더 샀다. 시티 라이트 출판사에서 만든 일러스트 화가 폴 마돈나Paul Madonna의 <Everything is its own reward>. 거리의 지저분한 전깃줄과 공사 중인 건물까지 여과 없이 그린 그의 그림을 보며 샌프란시스코를 추억하기 위함이었다.
시티 라이트 서점 City Light Bookstore
위치 261 Columbus Avenue San Francisco 운영시간 오전 10시~자정
홈페이지 www.citylights.com
1) 비트문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중반,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중심으로 보헤미안적인 문학가·예술가들이 산업사회로부터 이탈해 자발적으로 빈곤을 감수하며 개성을 표출하려 했던 문화를 일컫는다. 이들은 무정부주의, 재즈, 술, 마약, 동양의 선禪 등에 심취했다.
2 Bike the Bridge Sanfrancisco
금문교 너머까지 꿈의 페달을 밟고
소설가 김연수의 말을 빌리자면, 동양인 누구라도 다리 너머의 태평양과 그 너머의 땅을 상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금문교.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틈엔가 마음을 젖게 만드는 그 다리를 내 힘으로 건너 보고 싶었다. 저 거대한 붉은 기둥에 손을 대 보고 싶었고, 다리 너머 버드나무가 소살거리며 춤춘다는 소살리토Sausalito로 건너가 보고 싶었다. 유람선을 타고 다리 밑까지 1시간 만에 관람한 적이 있었으니, 이번에는 ‘빨리감기’를 하지 않고 금문교와 그 주변 풍경을 내 맘대로 멈췄다 재생했다 반복하고 싶었다.
피셔맨스 와프Fisherman’s wharf, 39번 부두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평소에 자전거를 타보지 않았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몇 군데 언덕이 있지만 그다지 가파르진 않다”는 자전거숍 직원의 말만 순진하게 믿고, 물 한 통 들고 출발했다. 금문교의 남쪽 진입로에 닿기까지 해변가에는 알카트라츠섬, 파인아트 갤러리, 월트 디즈니 박물관 등 볼거리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러나 내 관심은 저 다리와 다리 너머의 마을에 있었으니 페달을 힘껏 밟아 내달렸다. 지도상에 ‘Uphill’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쓰여 있는 언덕길은 자전거와 담을 쌓고 지내던 나에겐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 당당하게 서 있는 야자수,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연출하는 느긋한 풍경을 바라보면 타들어갈 듯한 허벅지로도 힘을 낼 수 있었다.
금문교가 크게 보일수록 감격은 더해져 갔다. 테마파크를 제외하고, 그러니까 감동을 주입하려는 목적의 오락적 시설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큰 감동을 주는 인공 구조물이 있을까? 거센 바람을 맞으며 다리에 오르자 낮게 깔렸던 구름이 걷히며 금문교는 더욱 붉어졌다. 태평양 쪽 바다는 짙푸른 색을 발했고, 다리 너머 마린 헤드랜드는 검은 절벽으로 장엄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십여 분을 달렸을까. 다리 너머 내리막길을 따라 소살리토로 진입했다. 금문교 남쪽과는 공기 자체가 달랐다. 지도에는 ‘소살리토 방향에서 바라보는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이 아름답다’ 쓰여 있었지만 이제껏 본 적 없는 굵직한 버드나무, 세쿼이아 나무, 삼나무가 형성하고 있는 스카이라인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숲이 뿜어내는 공기는 지상의 어떤 향수보다도 달콤한 향을 내뿜었다. 소살리토. 캘리포니아의 리비에라라는 수식어처럼 지중해의 어느 마을을 옮겨다 놓은 듯한 풍경이 여유롭기 그지없다.
영화 <첨밀밀3-소살리토>에 나온 아이리시 카페1) ‘부에나 비스타Buena Vista’에서 거품 커피를 마시며 숨을 돌렸다. 숯불을 쬔 것처럼 몸에서 가시지 않는 짙은 나무 향과 몸 속으로 번지는 커피 향이 오묘한 조화를 이뤘다. 샌프란시스코 39번 부두로 돌아가는 보트 안에서 다시 금문교를 보았다. 이미 해가 등 뒤로 넘어간 밤, 금문교는 또 다른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자전거 대여점 ‘Blazing Saddles’
위치 39, 41번 부두 대여료 성인 32달러, 어린이 20달러부터 www.blazingsaddles.com
1) 아이리시 커피
아일랜드 더블린공항 로비라운지에서 추운 승객들에게 제공해 주던 칵테일. 유리잔 테두리에 황설탕을 묻히고, 아이리시 위스키를 붓고 끓인 뒤 거품 낸 커피를 씌운다. 더블린에서 성공한 이 커피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로 넘어와 크림 맛을 더욱 풍부하게 했고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게 됐다.
1 금문교는 몇 킬로미터 떨어진 해변에서 물끄러미 처다볼 때와 그 사이를 관통할 때 전혀 다른 기분이 드는 신비한 다리다. 페달을 밟는 순간, 두려움과 설렘이 회전하는 바퀴수만큼 가파르게 교차한다 2 피어39에서 금문교로 향하는 길에는 아리따운 주택들이 줄지어 있다 3 소살리토에서 바라본 금문교의 모습 4, 5 지중해 리비에라 풍의 휴양지 소살리토
3 17Mile Drive Monterey~Carmel
물개 울음 들리는 환상의 해안 드라이브
몬터레이 지역, 퍼시픽 그로브Pacific Grove와 페블비치Pebble Beach를 지나는 17마일 해안 드라이브 코스는 가장 컬러풀한 캘리포니아의 면모를 보여 준다. 이 드라이브 코스는 관광회사인 페블비치사에서 운영하는 사설 도로다. 고로 직접 운전을 하고 들어올 경우, 입장료 9.5달러를 내야 한다. 운전에 자신이 없다면 영화 촬영 장소를 중심으로 관광을 하는 무비투어1)에 합류하는 것이 좋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 해안도로에서 촬영된 영화만 해도 <원초적 본능>, <제임스 본드>,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 수십 편이 넘는다. 그만큼 로맨틱하고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에 적합한 명소가 많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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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7번 국도를 연상시키는 이 해안 코스에서 가장 먼저 눈이 휘둥그레지는 풍경은 수백 마리는 족히 되는 물개와 바다사자 떼가 바위 섬에 모여 일광욕을 즐기며 ‘떼창’을 부르는 장면이었다. 펠리컨과 바다새, 해달까지 수많은 바다 포유류들이 섬에 모여 노니는 장면을 그저 동물원에 온 어린아이처럼 넋놓고 보고 있었다. 17마일 드라이브의 트레이드 마크 격인 ‘외로운 사이프러스 나무The Lone Cypress tree’ 주변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17마일 드라이브 코스의 마지막, 다시 68번 국도로 빠지기 전에는 세계적인 PGA 골프코스가 있다. 매년 AT&T 페블비치 프로암 대회가 개최되는 프로 코스와 일반인들을 위한 코스로 구성돼 있다. 골프채를 한 번이라도 손에 쥐어 봤다면, 누구나 꿈꿔 봤을 만한 코스라 할 만하다. 푸른 바다, 사이프러스 나무로 빽빽한 낮은 언덕, 염도가 느껴지지 않는 상쾌한 바닷바람, 최고급 별장. 모든 것이 완벽하다.
1)블록버스터 시닉투어
17마일 드라이브의 하이라이트만을 보고 싶다면, 매일 1시에 출발하는 무비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운전기사가 안내를 하는 중간중간 영화 촬영지를 지날 때는 수십년 전, 배우들이 직접 내레이션하는 ‘낡은 목소리’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다. www.montereymovietours.com
1 캘리포니아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는 미국에서도 최고의 절경을 자랑한다. 빅스비 다리Bixby bridge는 몬터레이의 상징과 같은 풍경으로 유명하다 2 몬터레이에 위치한 사설 관광도로 ‘17마일 드라이브’ 중 물개 떼를 볼 수 있는 버드 록Bird Rock 3 17마일 드라이브의 마지막 지점에는 세계적인 PGA 골프코스 페블비치가 위치하고 있다
4 Solvang Santa Barbara County
노천 카페서 즐기는 대니시 베이커리
풍차와 덴마크 깃발이 나부끼는 이 길의 이름은 코펜하겐 드라이브Copenhagen Dr. 이곳은 캘리포니아 속 덴마크 민속촌 솔뱅이다. 1911년 집단 이주해 온 덴마크인들이 북유럽 저편의 덴마크보다 더 덴마크스럽게 만든 마을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깔끔한 마을 풍경은 캘리포니아의 찬란한 햇살과 어우러져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덴마크어로 ‘화창한 땅’이라는 뜻의 솔뱅은 캘리포니아에서도 비옥한 지역으로 덴마크인들이 그들의 언어와 음악, 음식을 가져와 정착시키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이 캘리포니아여서일까? 솔뱅에서는 덴마크의 문화 중에서도 음식 문화가 다양하게 발달했다. 솔뱅의 골목골목에는 대니시 베이커리, 대니시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어 길을 따라 미식 여행을 즐기는 추천 루트가 있을 정도다. 건강식으로 명성이 높은 덴마크 음식은 솔뱅에서 보다 발전적으로 발현됐다.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고급 와인과 과일이 어우러진 음식의 맛은 덴마크 본연의 맛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여행객들에게 유독 인기가 많은 덴마크식 팬케익 ‘에블레스키버Aebleskiver’를 파는 솔뱅 레스토랑은 늘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여행 중 유독 당기는 ‘달콤한 맛’에 대한 욕구를 완벽히 충족시키는 맛으로 정평이 높다. 솔뱅의 지형은 오르막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평지다. 자전거가 최고의 교통수단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니, 홀로도 좋고, 가족용 다인승 자전거도 좋다. 솔뱅에서 ‘자전거 미식여행’을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위치 로스앤젤레스에서 208km 떨어져 있으며, 자동차로 약 2시간 30분 소요
홈페이지 www.solvangusa.com
1)덴마크 다이어트
덴마크 국립병원에서 치료용으로 개발한 식단으로 달걀과 채소를 이용한 고단백 저열량 식단으로 되어 있으며, 이 식이요법을 성공하면 체질이 변화되어 인체가 탄수화물을 받아들이지 않아 체중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주 메뉴는 삶은 달걀, 자몽, 채소, 블랙커피, 쇠고기, 닭고기, 양고기, 토마토 등이다.
1 덴마크 민속촌으로 불리는 솔뱅은 완벽한 평지 지형으로 다인용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기에 좋다 2 지명조차 덴마크식으로 되어 있는 솔뱅은 덴마크보다 더욱 덴마크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3 솔뱅에서는 캘리포니아산 재료로 만든 먹거리들이 유명하다. 특히 달콤한 디저트류가 많다
5. Hearst Castle San Simeon
유럽을 동경한 거부의 지상 낙원
미국인의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은 그들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곳곳에 스며 있다. 우리가 80년대까지 ‘미제’, ‘일제’, 통틀어 ‘쩨’라고 하는 것들을 동경했던 것 이상으로 미국인들도 유럽제, 유럽풍에 대한 모종의 선망을 갖고 있음은 대부호의 저택을 가득 메운 예술품에서 감지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의 정확히 중간 지점인 샌 시메온San Simeon 지역에 위치한 허스트캐슬에서는 인간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상 낙원을 만들 수 있을 때 어느 수준까지 갈 수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허탈한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하다.
광산업으로 재벌이 된 조지 허스트George Hearst는 지금의 허스트캐슬 자리에 휴양 목적의 대저택을 만들었다. 그의 외아들 윌리엄William Randolph Hearst은 겨우 10살 되던 해에, 어머니와 유럽 여행 중 건축물과 예술품의 장엄함에 압도되었고, 거기서 느낀 영감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와 저택을 성으로 꾸미는 꿈을 키웠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언론사를 물려받은 뒤, 신문사를 인수하고, 또 창간하면서 미국 전역에 신문사 26개, 잡지사 13개, 라디오방송국 8개를 보유한 굴지의 언론재벌이 되었다. 신문사는 연일 선정적인 보도로 옐로 저널리즘이라고 매도를 당했지만 허스트는 성을 건축하고 꾸미는 일에 생을 바쳤다.
윌리엄 허스트가 타계한 뒤, 가족1)들에 의해 캘리포니아 주에 기증된 이 성은 진입로부터가 중세 유럽의 왕궁을 연상시킬 정도로 규모가 크다. 165개의 방, 1만 개 이상의 미술품, 약 50만 평방미터의 부지라고 하니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성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거대한 야외수영장. 고대 그리스, 로마식 조각상들이 야자수, 오렌지 나무와 함께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다. 허스트의 유럽 문화에 대한 선망은 공간 작명에도 묻어 있다. 테라스의 이름은 로마 신화에 나오는 넵튠Neptune, 손님들을 위한 접대공간은 ‘태양의 집’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카사 델 솔Casa Del Sol, 허스트의 방이 있던 건물은 ‘큰 집’을 뜻하는 스페인어 카사 그란데Casa Grande 등등이다.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객실만 해도 오늘날의 6성급 호텔에 뒤지지 않는 시설을 갖췄고, 실내에는 16세기 이탈리아풍 왕궁식 천장, 17세기 스페인 가구, 남프랑스에서 가져온 벽난로, 3,000년이 넘는 이집트 조각상 등 그 리스트만 열거해도 웬만한 박물관의 수준을 넘어선다.
허스트는 유럽 예술품과 태곳적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을 디자인하길 원했다. 하여 정원에는 동물원을 만들어 캥거루, 타조, 흑곰, 사자, 호랑이 등 미국에서 구경할 수 없는 동물들을 각국에서 들여와 길렀다. 이 성만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살아 숨쉴 수 있는 노아의 방주처럼 꾸미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이 부족했는지 허스트는 이 성보다 더 웅장한 성을 꿈궜고, 그가 숨을 거두면서 그 꿈도 막을 내렸다.
허스트 캐슬┃위치 750 Hearst Castle Rd, North Coast, CA.
입장료 성인 25달러, 어린이 12달러 운영시간 오전 8시~오후 6시(3~9월), 오전 9시~ 오후 5시(10~2월) 홈페이지 www.hearstcastle.org
1)허스트 패밀리 Hearst Family
광산업으로 백만장자가 된 아버지 조지 허스트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수많은 언론사를 운영하고, 허스트캐슬을 만든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미국에서도 ‘언론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윌리엄이 사망한 뒤, 자손들은 허스트캐슬을 캘리포니아주에 기증했고, 허스트 코퍼레이션을 설립해 <에스콰이어>, <코스모폴리탄>, <엘르> 등의 잡지를 발간하고, 미국 전역에 29개 TV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언론 재벌 윌리엄 허스트가 만든 ‘허스트 캐슬’. 중세 유럽의 왕궁을 무색케 할 정도로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이 성에서는 한 인간의 미美에 대한 순수한 열정보다는 주체할 수 없는 소유욕이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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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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