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떨어진 사람들, 이 책 읽고 용기 냈으면”

“바닥에 떨어진 사람들, 이 책 읽고 용기 냈으면”

입력 2011-10-08 00:00
업데이트 2011-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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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의 아들·날품팔이였던 그… 日아쿠타가와상 수상 니시무라 겐타 방한

“당신과 나는 똑같은 인텔리 깡패다.”

숱한 망언으로 유명한 일본의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가 144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니시무라 겐타(44)에게 건넨 말이다. 지난 1월 ‘고역열차’(양억관 옮김, 다산책방 펴냄)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자마자 니시무라의 존재는 일본을 뒤흔들었다. 중학교 졸업에 날품팔이로 하루하루를 전전하던, 부친이 성범죄자란 치명적인 이력을 지닌 40대 중년 남자가 일본 제일의 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 심사위원을 맡은 이시하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보수지만 1956년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니시무라에게 한 말은 “자기 뜻대로 깡패처럼 거침없이 살면서 지적인 작업은 놓지 않는다는 뜻”이란다.

‘고역열차’로 지난 5일 한국 기자들과 만난 니시무라의 인상은 소설 속 주인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역열차’의 열아홉 살 주인공 간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성범죄를 저지르자, 태어나고 자랐던 거리에서 남몰래 도망친다. 간타는 일용 항만 노동일로 생계를 꾸리며, 일당 5500엔에 매달려 서글픈 하루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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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것이 첫 해외여행이었다는 144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니시무라 겐타. 이 일본 작가는 험악한 인상 때문에 세관과 호텔에서 심문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껄껄 웃었다.  다산북스 제공
한국에 온 것이 첫 해외여행이었다는 144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니시무라 겐타. 이 일본 작가는 험악한 인상 때문에 세관과 호텔에서 심문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껄껄 웃었다.
다산북스 제공
●“작가 후지사와 작품은 구원… 그의 무덤 지킬것”

천성이 외로움을 잘 타는 간타는 전문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사귀지만 ‘멍청이 대학생 노동자’란 욕설을 내뱉어 관계를 망친다. 그에겐 작업복 뒷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는 후지사와 세이조(1889~1932)의 작품 복사물이 유일한 위안이다.

후지사와는 인간의 추악함을 주로 다루었던 사소설 작가이다. 니시무라의 작품도 지금은 일본에서 쓰는 사람이 드문 사소설로 분류된다. 사소설은 작가의 경험을 거의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일본 특유의 문학 장르. 하지만 니시무라는 자신의 작품이 100% 경험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니시무라는 특이한 이력뿐 아니라 판매 부수로도 화제를 낳았다. ‘고역열차’가 실린 종합월간지 ‘문예춘추’ 3월호는 80만부가 팔리며 매진됐다. 이후 발간된 단행본 ‘고역열차’도 20만부가 팔렸다.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3500만엔(약 5억 4500만원)의 상금을 받은 니시무라는 이제 노동을 하진 않는다.

29살에 만난 후지사와의 소설은 니시무라 인생의 구원이 됐다. 서른이 다 되어 이 꼴로 살아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고,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됐다. 니시무라는 후지사와의 무덤이 있는 절을 한 달에 한 번씩 찾고 있으며 그의 무덤을 지켜 주는 일을 자처했다. 절의 승려에게 부탁해 후지사와의 무덤 옆에 자신의 묏자리도 준비했다.

니시무라가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36살 때. 문예춘추 계열 동인지에 발표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부터다. ‘고역열차’를 번역한 양억관씨는 니시무라의 문장에 대해 “문장이 길고 옛날에 썼던 단어를 많이 쓰는 등 전체적으로 난해한 편이어서 손질을 꽤 했다.”며 “비슷한 뜻의 두 단어가 있으면 어려운 단어를 골라 소설에 썼다.”고 설명했다.

성범죄를 저질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그 사건을 방영하기도 했던 아버지의 존재는 니시무라에게 어떤 의미일까. 남아 있는 가족인 누나와 어머니와도 연락하지 않는다는 니시무라는 의외로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가정을 파탄 낸 아버지가 한스럽고 원한을 갖기도 했지만, 그 아버지가 소설 소재를 제공했다는 점은 좋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내력 때문에 앞으로 가정을 꾸리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소설가로서 인생 마치고 싶어”

그에게 남아 있는 또 하나의 목표는 가와바타 문학상이다. 신인에게만 주는 아쿠타가와상과 달리 가와바타상은 신인, 기성 가리지 않고 그해 발표된 가장 뛰어난 단편소설을 골라 상을 준다. ‘고역열차’에 실린 또 다른 단편 ‘나락에 떨어져 소매에 눈물 적실 때’는 “소설가로서 인생을 마치고 싶다.”는 니시무라의 솔직한 심정이 담긴 사소설이다.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라고 말해도 좋다. 나보다 막다른 골목이나 바닥에 떨어진 사람이 책을 읽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사소설로 발가벗듯 자신의 삶을 드러내 일본인에게 감동과 충격을 안긴 니시무라가 한국 독자들에게 바라는 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11-10-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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