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인류]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열린책들/1권 448쪽·2권 336쪽/1만 3800원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2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제3인류’는 평범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같은 작품이다. 이야기의 규모가 크고 전개는 빠르지만 독자에게 깨달음을 주는 순간은 드물며 정치적으로는 편파적이다.
‘제3인류’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당신이 이 소설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는 순간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의 오늘”이다. 프랑스의 고고학자 샤를 웰즈 교수는 남극 지하에서 키가 17m에 이르는 선사시대의 인류를 발견한다.
웰즈 교수는 자신이 ‘호모 기간티스’라 이름 붙인 초거인들이 8000년 전 지구에 생존했으며 수명은 1000살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거인들이 남긴 벽화에는 이들이 고도의 문명을 이루었으나 소행성의 충돌로 멸종했다는 점이 암시돼 있다. 그러나 흥분도 잠시, 동굴이 무너지면서 탐사대는 목숨을 잃는다.
작품의 주인공은 웰즈 교수의 아들인 생물학자 다비드 웰즈와 그의 동료인 내분비학자 오로르 카메러다. 웰즈 교수가 인류의 기원을 밝혀내려고 했던 데 비해 다비드와 오로르는 진화를 연구한다. 다비드는 인류가 점차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믿으며, 오로르는 특정 여성의 강한 면역력이 진화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여긴다. 종교적 갈등과 핵폭탄의 위협 등으로 인류의 위기가 커지자 프랑스 정부는 비밀리에 이들에게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라는 지시를 내린다. 연구 끝에 두 사람의 연구가 결합된 키 17㎝의 초소형 난생(生) 인류 ‘에마슈’가 탄생하지만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이란이 전쟁을 시도하면서 인류는 위험에 빠진다. 1세대 인류가 초거인이고, 2세대 인류가 현재라면, 3세대 인류는 초소형이라는 것이 베르베르의 상상이다.
문제는 아무리 허구적 상상력의 결과로 소설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최소한의 개연성은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베르베르는 지구를 ‘가이아’라는 존재로 의인화해 1인칭 화자로 등장시키는데, 가이아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고비마다 나타나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초반부에 등장했던 초거인의 비밀을 가이아가 스스로 밝혀 가면서 이야기는 설명조로 변한다. 제3인류 연구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환각 상태에 의지해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다른 단점은 이슬람을 악의 축으로 묘사하는 정치적 편향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프랑스가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나라”이고 독자가 많은 한국이 “혁신을 진정으로 권장하는 유일한 나라”인 데 비해 아랍 국가는 신형 원자탄을 개발하고 “뒷구멍으로 과격파 테러 단체에 돈을” 대주다 끝내 전쟁을 일으키는 곳에 불과하다. 작가의 편협함이 과연 상상력이라는 이름만으로 무마될 수 있을까. 출간 예정인 2부는 현재 번역 중이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이세욱 옮김/열린책들/1권 448쪽·2권 336쪽/1만 3800원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2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제3인류’는 평범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같은 작품이다. 이야기의 규모가 크고 전개는 빠르지만 독자에게 깨달음을 주는 순간은 드물며 정치적으로는 편파적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연합뉴스
연합뉴스
‘제3인류’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당신이 이 소설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는 순간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의 오늘”이다. 프랑스의 고고학자 샤를 웰즈 교수는 남극 지하에서 키가 17m에 이르는 선사시대의 인류를 발견한다.
웰즈 교수는 자신이 ‘호모 기간티스’라 이름 붙인 초거인들이 8000년 전 지구에 생존했으며 수명은 1000살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거인들이 남긴 벽화에는 이들이 고도의 문명을 이루었으나 소행성의 충돌로 멸종했다는 점이 암시돼 있다. 그러나 흥분도 잠시, 동굴이 무너지면서 탐사대는 목숨을 잃는다.
문제는 아무리 허구적 상상력의 결과로 소설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최소한의 개연성은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베르베르는 지구를 ‘가이아’라는 존재로 의인화해 1인칭 화자로 등장시키는데, 가이아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고비마다 나타나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초반부에 등장했던 초거인의 비밀을 가이아가 스스로 밝혀 가면서 이야기는 설명조로 변한다. 제3인류 연구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환각 상태에 의지해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다른 단점은 이슬람을 악의 축으로 묘사하는 정치적 편향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프랑스가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나라”이고 독자가 많은 한국이 “혁신을 진정으로 권장하는 유일한 나라”인 데 비해 아랍 국가는 신형 원자탄을 개발하고 “뒷구멍으로 과격파 테러 단체에 돈을” 대주다 끝내 전쟁을 일으키는 곳에 불과하다. 작가의 편협함이 과연 상상력이라는 이름만으로 무마될 수 있을까. 출간 예정인 2부는 현재 번역 중이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2013-10-26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