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의 그림으로 지우는 ‘줄기찬 외로움’
소설가 이제하.외로운 분이다.
외로움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분이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으로 노트북에다 외로움을 새겨 넣는 분이다.
그림의 밖에 소설이 있는 것인지, 그림 안에 소설이 있는 것인지 알 길 없다.
하지만 소설가라 불리고 싶은 분.
제가 보기엔 당신의 생이 소설적이었어요.
소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길에 대한 당신의 자서전이 아니었는지.
당신을 두고 나는 길을 나섭니다. 당신의 노트북에서 사진 몇 장을 빼들고.
두 시간여의 앞뒤 없는 질문들을 모조리 잊어버린 채.
삶과 생의 간극,
그 머나먼 길
담배 피워요. 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어요. 지금도 남자보다 여자를 만나는 게 더 편해요. 네 살 때인가. 아버지에게 된통 혼난 이후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생겼어요. 내 인생의 커브가 시작된 거지요. 문학도 미술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지만, 어려서부터 글과 그림을 좋아했었지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학원》이라는 잡지에 내가 투고한 글들이 실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학원문학상 대상을 받았어요. 같이 상을 받았던 사람들이 황동규 시인과 마종기 시인 등이었지만 원체 내성적인 데다가 사교성이 없어서 이 사람들과 만나서도 친구로 깊이 사귄 적이 없어요.
서울 콤플렉스에다 서울 사람들의 특유한 자존심이랄까, 서울내기들이라고 자랑스레 자신을 드러내 놓는 게 나와는 도통 통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홍대 미대 조소과에 입학했는데, 서울이라는 동네가 나와는 도무지 맞지 않는 코드여서 늘 혼자였지요. 문단에서도 그렇고, 마음 나눌 친구가 없었고, 지금도 그래요. 생활인으로서도 그렇지만, 인생이 구겨지며 살아온 아니, 스스로 구기며 살아온 거라고 자가진단 하지요.
구름의 초상
해변의 여인
그런 면에서 내가 아는 소설가 오정희 여사는 참으로 모범적인 삶과 좋은 소설을 써 왔어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인데, 삶인 현실과 허구인 소설을 병행하는 노릇이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내게는 오정희 여사가 불가사의하게 여겨질 때가 참 많았지요.
그림은 얼마 전 다섯 번째 개인전을 했는데, 난 화가로 불리기보다는 소설가로 남기를 원해요. 그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목숨 걸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그림을 하는 이유는 소설 써서 받는 원고료보다는 좀 나으니까. 단발적이고 일회성이고. 아는 이들이 그림 한 점씩 사 주는 게 삶을 버티는 데 도움이 되니까. 측은지심이라 해야 할까. 저 사람은 이렇게라도 도와주지 않으면 소설도 못 쓸 사람이니까.
내가 미술 전시회를 하면 사람들이 그렇게들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문학상도 받아 봤고, 소설가로 과분한 대접도 받았지만, 나는 내 삶이 관성적이라는 것에 스스로 동의해요. 가니까 가는 거지.
문지하·염성순 2인전에서
난 태생적으로 누구와 어울려서 어깨 끼고 같이 가질 못하는 건지. 작고한 김영태 시인과는 매우 친근한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김영태 시인은 재주가 많은 사람이지만, 뭐랄까, 정서적으로 나와는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었어요. 무용 좋아하고,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굵은 펜으로 하는 그 특유의 데생은 그 사람만의 개성인데, 선이 주는 느낌이 아니라 거기에서 입체감이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밤의 말과 소녀
3년 전 죽은 아내의 유골을 뿌리려 동해안으로 가는 한 남자의 여정을 다룬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우리 시대라는 말의 환상을 깨는 데 좀 더 주력해야겠어요. 장수 집안이기는 하지만 나는 담배 없이는 못 살아요. 그렇지만 술은 알코올 분해효소가 없는지 한 잔만 마셔도 이기지 못해요. 이 나이에 술까지 마셨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마주앉아서 얘기하지 못할 거예요. 담배도 술도 나쁜 건 나쁜 건데, 인생에서 나쁜 것 다 빼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대체 뭐가 있을까? 내게 그림은 필요고, 소설은 운명 같은 거라 할까. 다시 말하면 그림은 삶이고, 소설은 생인 셈이지요. 거 있잖아요. 목적도 목표도 없는. 그냥 가는 거지요. 애초부터 타인이 없었으니 나도 없었던 셈인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한 달에 한두 번쯤 가평에서 서울 올라오는데, 놀러 와요. 어떤 사진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이 컴퓨터에 내 사진과 그림이 있으니, 봐요. 지난번 전시회 때 내 그림 사주신 분을 잘 안다고 했지요? 그림 좀 전해줄래요?
글_ 최준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