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페루자의 물물교환 장터

이탈리아 페루자의 물물교환 장터

입력 2011-10-30 00:00
업데이트 2011-10-3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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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이탈리아 움브리아 주 페루자에는 매달 첫째 주 일요일이면 분주해지는 골목이 하나 있다. ‘피키니노 광장(Piazza Piccinino)’ 골목이다. 평소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이곳에 ‘살아 있는 움브리아의 땅(Umbria Terra Viva, 이하 움브리아 시장)’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리고 장사 나온 사람들의 인사말과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해진다. 움브리아 시장은 1993년 문을 열어 올해로 18년째 이어지는 친환경 시장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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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브리아 시장은 먹을거리에 한정돼 있던 ‘유기농 시장’의 개념을 넓혀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제작된 공예품, 공정무역상품까지 보다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친환경 시장으로 유명하다. 장이 서는 날이면 뜨거운 햇살을 가리기 위한 천막이 세워지고 색색의 보가 깔린 작은 테이블들이 차례로 놓인다. 그 위로 직접 농사지은 밀로 만든 유기농 빵과 쿠키, 손수 조리한 잼, 유기농 꿀, 치즈와 올리브 등 각종 음식과 꽃과 채소로 만든 천연비누, 양털과 전통 물레로 짠 옷감, 집 앞 정원에서 키운 꽃을 말려 만든 장식, 나무를 깎아 만든 생활용품, 돌멩이로 만든 장신구 등 친환경 수공예품들이 점포마다 조화롭게 진열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노동의 결과물이 시장의 주인공이다.

우리 부부도 제본 기술자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움브리아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친환경 시장과 무관할 듯 하지만 남편은 기계 사용 없이 전 과정을 손을 이용해 책을 만들며 오염과 소음을 최소화한다. 나는 식물성 염료로 염색한 가죽을 사용하는 한편, 수채화 기법으로 삽화를 그림으로써 아크릴이나 유화를 사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고 있다.

친환경 시장에 참가하는 상당수는 우리 부부처럼 커플이거나 가족이며, 이들 대부분이 페루자 근방에서 동·식물과 어울리며 소박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그날 수입과는 상관없이 행복한 사람들, 친환경 시장보다 더 친환경적인 무공해 미소를 가진 그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미국, 일본 등 의외로 타국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에 대해 이웃 점포에서 라벤더를 파는 줄리아 가족에게 물어보니 흥미로운 얘기를 해준다.

움브리아 시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독일 부유층의 젊은 청년들이 건너오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종전 후 독일의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이탈리아로 건너와 땅을 일구고 가축을 키우며 작은 집단을 만들어 자급자족을 시작했는데, 이러한 생활방식은 1970년대에 들어서자 히피 문화와 섞이며 자유롭고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초기의 급진적이었던 생활방식은 점차 잉여생산물과 공예품을 외부사람들과 교류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고 이것이 바로 움브리아 시장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세월은 지났지만 움브리아 시장에는 여전히 초창기 정신이 남아 있다. 장터에 나오는 사람들끼리 화폐 대신 물건을 교환하는 풍습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 저녁에도 장사가 끝날 무렵 이웃 점포의 줄리아가 먼저 여름내 잘 말린 보라색 라벤더를 한 아름 챙겨 내 품에 안겨주었다. 집 안에 두면 향도 좋고 자연 방충제 효과도 있다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나는 답례로 내가 그린 허브 그림 한 점을 줄리아에게 선물했다.

‘살아 있는 움브리아의 땅’이라는 이름의 가진 시장. 대자연이 선사하는 풍성한 삶과, 단순하고 평화로운 사람이 만드는 향기야말로 움브리아 시장을 진정 살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소주희_한국에서 공예디자인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순수미술을 공부하던 중 여행 차 잠시 들른 이탈리아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현재는 제본 기술자인 남편과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공동 작업을 한 책에 삽화를 그리거나, 중세시대 미니아튀르(세밀하게 그린 작은 그림이나 조그맣게 만든 공예품)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곧 태어날 아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일도 일상의 큰 기쁨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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