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으로 공동체 정신 가르치는 ‘케이12 건축학교’.
“꼬마 건축가~” 건축가 차상우 씨(41세, 엑토건축 소장)가 외치자 아이들이 박수로 대답한다. “짝짝짝.” 무언가 귀여운 웅성거림이 들려오는 이곳은 인천 남동구 구월4동에 자리한 ‘푸른솔도서관’. 여기에 모인 초등학생 꼬마 건축가 20여 명도 이날 오후 두 시간 동안은 ‘진짜 건축가’가 되었다.뜻있는 건축가들이 모여 고안해 낸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케이12 건축학교’. 개발된 지 벌써 10년째다. 케이12는 유치원을 뜻하는 킨더가르텐에서 고등학교 3학년을 뜻하는 투엘븐 그레이드라는 뜻. 매년 쉬지 않고 교육한 결과 그간 참여인원이 총 1,200명을 넘어섰다. 그렇게 쌓인 노하우를 정리해 올해 초에는 <어린이건축교실 에이80 프로그램>이라는 책까지 냈다. 현재는 비영리단체 ‘문화도시연구소’에 속한 건축 전문가 열네 명이 이 학교를 이끌고 있다. 에이12 건축학교에서 꼬마 건축가들은 무엇이든 협력해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한 꼬마가 긋던 선이 다른 친구가 긋던 선과 만나면 그대로 울타리의 설계도가 되기도 하고, 마당에 심을 은행나무를 어떻게 만들지 설왕설래해보기도 “우리가 만든 집 어때요?” 한다. “색종이를 접어 부채처럼 만들까?” “아니야 노란 찰흙을 동그랗게 모아야지.” 앞으로 진행될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우리 마을에 적합한 다리가 무엇일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보거나, 동화를 읽고 상상되는 집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다음 주엔 다 같이 동네를 돌아보며 마을지도를 만들 예정이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차 씨는 “평소엔 무심코 지나쳤던 주변 환경을 면밀히 관찰하며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차 씨가 케이12 건축학교에서 활동한 지는 올해로 3년째. 그간 별별 꼬마건축가를 다 만났다. “작업하던 아이가 갑자기 가위를 던져서 다른 아이가 다치는 일도 있었어요. 그래도 끝까지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게 힘을 모아 결국 하나의 작품을 만들도록 이끄는 게 제 몫이죠.” 건축사무소 소장이면서 충북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인 그가 변변한 보수 없이 바쁜 시간을 쪼개 이 일을 하는 이유는 건축가로서 느끼는 책임감 때문이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보다 이곳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게 훨씬 힘들더군요. 그렇지만 건축교육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건물을 지어 올리는 행위만 두고 건축이라고 할 수는 없거든요.”
케이12 건축학교의 교장이자 창립 회원인 홍성천 씨(46세, 엑토건축 대표)의 생각도 같다. “건축은 삶의 모습이에요. 삶은 모여서 사는 것이고요. 결국, 건축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더불어 잘 살지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건축엔 정답도 없지요. 똑같은 조건에서 얼마든지 다르게 설계할 수 있어요.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활동인 겁니다.” 꼬마 건축가들이 함께 어울려 작업하는 동안 설득하거나 따르거나 도와주다 보면, 자연스레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터득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대학 교수와 건축가 열네 명이 모였는데도 넘치는 건 열정뿐이다. 시간도 인력도 돈도 부족하다. 교육을 위탁받은 기관에 출강해 강의료를 받는다 해도 도로 케이12 건축학교에 헌납하고 있다. 공교육 현장에 몸소 찾아가 교육을 진행할 때 필요한 재료비로 쓰기 위해서다. 이번 학기엔 서울시와 용인시에 있는 학교 두 곳에서 진행 중이라고 한다. 꼬마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진짜 건축가들은 쉼 없이 뛰고 있다.
글쓴이, 송충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