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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히로시마 피폭 뒤 반핵 앞장선 쯔보이 수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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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1-10-28 07:16 일본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지난 23일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쯔보이 수나오가 2016년 5월 2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찾았을 때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 지난 23일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쯔보이 수나오가 2016년 5월 2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찾았을 때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76년 전 최초의 원자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졌을 때 피폭돼 온몸에 화상을 입고도 살아남아 핵무기 반대에 앞장선 쯔보이 수나오가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23일 숨을 거뒀다는데 뒤늦게 소식이 전해졌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을 때 그는 대학에 등교하던 꿈많은 스무살 청년이었다. “난 대략 3시간 동안 뛰어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걸을 수조차 없었다.” 돌 하나를 집어 바닥에다 “쯔보이 여기서 죽는다”라고 썼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몇주가 지난 뒤였다.

몸이 너무 나빠졌고 상처도 많아 재활 치료란 것이 마룻바닥을 기어다니는 일이었다고 AP 통신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았다.

14만명이 몰살됐다. 살아남은 쯔보이는 평생을 핵무기 철폐 캠페인에 헌신했다.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는데 어린 제자들에게 전쟁 중 자신이 목격한 참사를 들려주곤 해 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이 ‘피카돈(번쩍 쾅) 선생’이었다.

버락 오바마가 2016년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히로시마를 찾았을 때도 만났다. 두 사람은 악수하며 1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일본의 국립 원자폭탄 및 수소폭탄 생존자 모임을 이끈 쯔보이는 나중에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생전의 고인은 반핵 운동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절대 포기하면 안된다”고 조언했다고 했다. 아키라 가와사키는 “우리는 소명을 위한 위대한 지도자의 죽음을 추모해야 할 뿐 아니라 그의 길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따라가야 하며 그가 남긴 말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접 사인은 빈혈로 알려졌는데 암이나 다른 질환도 많아 입원해 있으면서도 열심히 반핵 활동을 지휘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되고도 살아남은 이들이 12만 7000명 가량 생존해 있다.

고인은 2녀1남을 유족으로 남겼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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