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큰선비’로 불리는 송담 이백순 선생이 8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82세.
이 선생은 1930년 전남 보성군 복내면 시천리에서 5남 3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19세까지 조부인 낙천(川) 이교천 선생에게 글을 배웠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마치지 못했지만 21세까지 전라도 곳곳의 유명 유학자들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이교천 선생은 우암 송시열의 학맥을 이은 간재 전우(1841~1922)의 문하로 고향에서 덕산정사(德山精舍)를 짓고 학문을 가르쳤다.
고인도 조부의 길을 따라 1989년 주암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될 때까지 덕산정사에서 학문을 닦았다. 전남 광주 학동으로 자리를 옮긴 고인은 제자 양성에 힘써 1000여명의 후학을 길러냈다. 대표적으로 ‘송담 강학록’과 한문학 개론서인 ‘한문학 대계’가 있고 유학의 10대 경전을 모두 완역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옥남씨와 상범(자영업)·상헌(회사원)·상규(삼성전자 과장)씨 등 3남 4녀가 있다. 빈소는 광주 동구 학동 금호장례식장, 발인은 11일 오전 9시. (062)227-4382.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이 선생은 1930년 전남 보성군 복내면 시천리에서 5남 3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19세까지 조부인 낙천(川) 이교천 선생에게 글을 배웠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마치지 못했지만 21세까지 전라도 곳곳의 유명 유학자들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이교천 선생은 우암 송시열의 학맥을 이은 간재 전우(1841~1922)의 문하로 고향에서 덕산정사(德山精舍)를 짓고 학문을 가르쳤다.
고인도 조부의 길을 따라 1989년 주암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될 때까지 덕산정사에서 학문을 닦았다. 전남 광주 학동으로 자리를 옮긴 고인은 제자 양성에 힘써 1000여명의 후학을 길러냈다. 대표적으로 ‘송담 강학록’과 한문학 개론서인 ‘한문학 대계’가 있고 유학의 10대 경전을 모두 완역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옥남씨와 상범(자영업)·상헌(회사원)·상규(삼성전자 과장)씨 등 3남 4녀가 있다. 빈소는 광주 동구 학동 금호장례식장, 발인은 11일 오전 9시. (062)227-4382.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2012-02-0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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