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100세를 위하여] <3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10·끝)

[행복한 100세를 위하여] <3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10·끝)

입력 2013-07-08 00:00
수정 2013-07-0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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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죽음, 웰다잉을 꿈꿉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직지심체요절’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구텐베르크 성서’가 가장 먼저 제작된 금속활자 문서로 인식돼 왔다. 이런 서구 중심의 편견을 무너뜨리고 직지심체요절을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한 사람이 역사학자 고 박병선(1928~2011년) 박사다. 프랑스에서 버려지다시피 잠자고 있던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 반환에 앞장서 ‘외규장각의 어머니’라는 찬사를 얻었다.

서울시 마포구의 ‘웰다잉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수의을 입고 직접 관에 들어가보는 입관 체험을 하고 있다. 마포구청 제공
서울시 마포구의 ‘웰다잉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수의을 입고 직접 관에 들어가보는 입관 체험을 하고 있다.
마포구청 제공
박 박사의 죽음 역시 주목받았다. 2010년 직장암 수술과 이어진 추가 수술에도 불구하고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박 박사는 의연한 죽음을 선택했다. 호스피스 치료를 받으며 숨을 거두기 전까지 병인양요와 외규장각 의궤 약탈 과정을 담은 책의 저술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품위 있는 죽음을 통해 ‘웰다잉’(well dying)을 실천한 셈이다.

품위 있고 아름답게 인생을 살아가는 ‘웰빙’과 더불어 최근에는 ‘웰다잉’이 각광받고 있다. 죽음은 한때 거론 자체를 금기시했던 단어다. 웰다잉의 부상에는 일생 동안 인간다운 삶을 살아왔듯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다운 죽음’을 준비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의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미약했다. 영국의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2010년 세계 40개국을 대상으로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을 평가해 발표했다. 생애 마지막 보살핌의 질과 유용성이 기준이다. 우리나라는 32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최근에는 웰다잉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해 6월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팀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중 4명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의 첫째 조건으로 꼽았다. 환자나 가족이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무의미한 치료보다는 ‘모두의 행복’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웰다잉에 필요한 방안으로 88.3%가 ‘자원봉사 간병 품앗이 활성화’를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임종 체험 교육 등 웰다잉 관련 프로그램도 확산되고 있다. 복지재단이나 종교기관 외에 지방자치단체들도 속속 뛰어들고 있다. 서울 마포구는 2007년부터 매년 웰다잉 체험 교육 행사를 열고 있다. 죽음의 경과와 호스피스 교육 등 이론 교육과 자서전·유서 작성과 입관체험 등 체험실습으로 이뤄진다. 지금까지 1684명이 수강했다. 서울 종로구 역시 ‘웰다잉 연극단’을 운영, 노인들이 인생의 뒤안길을 더욱 충실히 마감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참여자가 사업 초기 매년 100여명 선에서 2011년부터 400명 수준으로 증가했다”면서 “노년층이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 여생을 풍요롭고도 충실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을 가리키는 ‘버킷리스트’와 유사한 유언장이나 ‘은퇴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도 웰다잉을 위한 권장 사례로 손꼽힌다. 여류작가 한말숙(82)씨는 2003년 한 문학잡지에 유언장을 기고해 화제를 모았다. 한씨는 유언장에서 “수의는 내가 준비한 것을 입히고 장례식은 병원 영안실, 가족장으로 검소하게 치러라. 묘비는 비싼 대리석을 쓰지 마라”고 당부했다.

전남 나주시의 농산물유통센터 대표인 심재승(55)씨는 지난해 ‘은퇴 후가 기다려지는 이유들’이란 에세이로 은퇴 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보건복지부가 주최)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가 적은 은퇴 후 할 일은 ▲가족과 여행하기 ▲두 딸에게 편지 건네기 ▲동화책 읽기 ▲장구 두드리기 ▲전원생활 등이다.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30년 넘게 몸담은 조직에서 이탈해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심씨는 “노년은 치밀한 계획과 사전탐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환한 바깥세상을 볼 수 없는 미로 같은 터널”이라면서 “그리워만 할 뿐 영영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게으른 두더지로 사느니 저 멀리 손짓하는 제2의 인생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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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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