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육상산 ‘아호사 논쟁’ 支離 vs 簡易

주자·육상산 ‘아호사 논쟁’ 支離 vs 簡易

입력 2010-06-28 00:00
업데이트 2010-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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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생전 학문적, 사상적으로 주자의 최고 라이벌은 상산(象山) 육구연(陸九淵·1139~1193)이었다.

강서 출신의 육상산은 집안 내력이나 출신 성분, 철학적 태도 및 학문에 대한 관점 등 여러 면에서 주자와 대비되는 인물이었다. 주자와 육상산은 당대에 이미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만나기를 기대했다.

●평생 라이벌… 1175년 역사적 만남

그리고 주자와 육상산의 역사적인 만남은 마침내 1175년 주자의 친구 여조겸의 주선으로 강서(江西) 지방 신주(信州)에 있는 아호사(鵝湖寺)에서 이루어졌다. 만남의 형식은 육상산 형제와 그의 제자들이 모여있는 아호사로 주자가 방문하는 형식이었다.

수일에 걸친 만남 동안 논점은 학문하는 방법에서 예각화되었다. 주자는 평소 자신의 소신대로 학문의 근본은 널리 보고 넓게 관찰하게 한 후에 요약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육상산-이때 육구연의 형 육구령도 함께 있었다-은 학문이란 사람의 본래적인 덕성(德性)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을 뿐임을 강조했다.

두 사람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마침내 주자는 육상산의 학문 태도가 지나치게 ‘간이(簡易·너무 간단하고 쉬움)’하다고 평가했다. 육상산은 주자의 태도야말로 너무 ‘지리(支離·흩어져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음)’하다고 논평했다.

지리함과 간이함! 이 짧은 한마디가 주자와 육상산의 학문적 성향을 대변한다. 주자와 육상산의 대립은 죽을 때까지 합치되지 못했다.

●도문학·존덕성 분기로 이어져

아호사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논쟁은 이어지는 신유학의 역사 속에서 도문학(道問學·이치의 탐구)과 존덕성(尊德性·도덕본성의 중시)의 분기로 전개되었다. 요컨대 도문학은 주자 식의 이학파(理學派)로, 존덕성은 왕양명 식의 심학파(心學派)로 나뉘어 발전했던 것이다. 논쟁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차이는 전근대 시기 중국의 사상사가 한층 섬세하고 풍부한 철학 논변으로 나아가는 튼튼한 재산이 되었다.
2010-06-2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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