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이 만난사람] 새해맞이 타종행사 준비에 바쁜 5대 종지기 신철민씨

[김문이 만난사람] 새해맞이 타종행사 준비에 바쁜 5대 종지기 신철민씨

입력 2012-12-27 00:00
수정 2012-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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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제야의 종소리 조율사… “종과 한몸돼 소원 비세요”

매년 이맘 때면 기다려진다. ‘제야의 종소리’,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다. 우선 제야의 뜻이나 한번 알아보자. 제(除)는 섣달 그믐을 의미한다. 그리고 야(夜)는 밤이다. 그러니까 섣달 그믐날 밤이다. 매년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한 해를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다. 보신각 타종은 조선 시대 도성의 4대문과 4소문을 열고 닫기 위해 종을 쳐 온 데서 유래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보신각종을 33번 치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1953년부터 시작해 세계적으로 독특한 새해맞이 행사로 정착했다. 평소 갖는 인간의 온갖 번뇌를 씻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대사처럼 내일의 새로운 태양에 기대려는 경건한 행사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만난 종지기 신철민씨가 제야의 타종행사 준비에 대해 설명하다가 활짝 웃으며 잠시 자세를 취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만난 종지기 신철민씨가 제야의 타종행사 준비에 대해 설명하다가 활짝 웃으며 잠시 자세를 취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자, 종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 왔던 또 한 해가 저문다. 뒤돌아볼 일도 많지만 그러하면 무엇하리. 더 새로운 앞날이 있는 것을. 인간은 어제에 대한 후회와 분노, 그리고 오늘의 질투에 사로잡혀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는 아둔함을 자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그냥 시원하게 종을 치자. 그리고 비워버리자. 종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둥~, 둥~. 온 천지에 퍼져 나간다. 굳이 33번일 필요가 없다. 단 한 번이라도 마음의 종을 소중하게 쳐서 올 한해 동안 소홀했던 사람들에게 들려주자.

보신각종(보물2호)은 조선 세조 14년 (1468년)에 주조돼 정릉사에 걸려 있다가 이후 원각사로 옮겨졌으나 임진왜란 때 절이 불에 타 종루로 옮겨졌다. 이후 고종 때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내걸면서 보신각이라 불리고 있다. 1985년까지 원래의 종으로 타종 행사를 했으나 종의 보호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오늘날 새해맞이 타종을 위해 걸어둔 종은 1986년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복제품으로 원광식(중요무형문화재 112호) 주철장에 의해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보신각종은 조선 시대에는 서울의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고 오늘날에는 매년 12월 31일 자정에 타종행사로 새해를 맞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 일반 시민들에게 보신각종을 타종하는 체험의 시간을 마련해 놓고 있어 미리 신청을 하면 누구나 종을 칠 수 있다.

보신각 종지기를 인생의 업으로 살아 가는 신철민(39)씨. 제야의 타종행사 준비로 바쁜 지난 21일 보신각에서 그를 만났다. 시민들을 상대로 종치기 해설을 하는 것도 바쁜 일이지만 제야의 타종행사가 그에게는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행사이기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은 보신각 바로 뒤 컨테이너 막사 안에 있다. 자리에 앉으면서 날씨도 추운데 힘들지 않으냐고 했더니 “종은 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냐.”며 활짝 웃는다. 제야의 타종행사는 4명씩 4개조로 16명이 서서 종망치(당목)의 손잡이를 잡고 치는 것이지만 사실은 종지기인 신씨가 종망치 맨 뒤에서 ‘5, 4, 3, 2, 1’하면서 힘껏 밀어쳐야 ‘둥~’하는 종소리가 비로소 울려퍼진다. 타종행사에 참석하는 인사는 종을 치는 당목에 손을 올려 약간의 힘만 주고 있을 뿐 실제로 당목을 움직이는 사람은 바로 신씨다. 시간과 속도, 그리고 힘을 정확하게 조절하고 맞추어야 제대로 된 종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종이 얼어붙지 않도록 마사지를 적절하게 해줘야 한다. 종을 약하게 진동시켜 추위에 얼어 있는 종을 깨우는 일이다. 종의 안전을 위해 주변을 꼼꼼하게 살피는 것도 그의 일이다. 그러다 보니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허다하다. 신씨는 5대 종지기로 7년차이지만 165년째 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해서 보신각종과 인연을 맺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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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종 상설타종 행사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에 열린다. 가운데 넥타이 차림의 신씨가 종치는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보신각종 상설타종 행사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에 열린다. 가운데 넥타이 차림의 신씨가 종치는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원래부터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2006년 중반쯤 보신각 상설 타종행사에 자원봉사 형식으로 참여하게 됐지요. 당시 보신각 관리소장은 돌아가신 조진호 선생님이었는데 4대에 걸쳐 보신각을 지켜온 분이었습니다. 그 선생님한테 타종과 관리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해 12월 제야의 타종행사 며칠을 앞두고 지병으로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병원에서 저한테 ‘보신각종을 꼭 지켜달라.’고 말씀하시면서 서울시에 추천서를 써주었지요. 저도 선생님한테 ‘평생 종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결국, 신씨는 5개월 가까이 종치는 법 등을 배운 뒤 스승의 유언대로 5대째 종지기로 대를 이어가게 됐다. 신씨는 스승과의 인연을 떠올리면서 “일을 배울 때 많이 혼났지만, 사랑과 열정으로 가르쳐주었다.”고 회고한다. 스승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다시 설명이 이어진다.

“선생님은 1962년부터 보신각을 관리해온 종로 토박이입니다. 구한말 궁궐 관리였던 조부님은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가 고의로 보신각 앞에 공중화장실을 설치하자 곡괭이를 들고 나가 허물었고 또 영친왕 근위대 출신인 선생님의 아버님께서는 6·25당시 매우 급한 상황임에도 ‘종님을 떠날 수 없다.’며 피란을 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역시 부친의 유언을 따라 종지기 가업을 이었지요. 사실은 선생님이 한 번 정도는 주인공으로 종을 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그는 스승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친아들처럼 항상 곁에 있었으며 장례식 때에도 위패들고 보신각까지 와서 생전의 정신을 되새겼다. 또 보신각 주변에 있는 모과나무, 향나무, 단풍나무 등 4그루 나무에 스승의 혼을 뿌리기도 했다. 당시를 회고하는 신씨는 스승에 대한 각별한 존경심이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해마다 명절 때면 과일 사들고 차례상에 올리는 일도 거르지 않는다.

스승이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은 혼자 결정해야 했다. 함께 지낼 때 배운 것을 토대로 ‘종치는 힘’ ‘관리요령’ ‘타종방법’을 터득해나갔다. 2007년에는 종소리가 이상하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있자 전국에 산재한 범종을 조사하며 보신각종에 잘 어울리는 종망치 나무를 찾아내기도 했다.

가장 보람으로 여기는 것은 상설 타종행사를 진행하면서 시민들이 종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소원을 말해봐 코너’를 만들었던 것이다. 종에 손을 대고 울림을 느끼며 소원을 빌 수 있도록 했더니 호응도가 예상보다 아주 높았다. 실의와 좌절감에 빠진 시민들이 종을 치고 나서 소원을 얻었다는 편지도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중등 임용고시에 낙방한 대학 졸업생이 종을 치고 나서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연,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하고 결혼 승낙을 받은 남자의 사연 등이다. 외국인들한테는 ‘원더풀’이라는 찬사를 많이 받았다. 신씨도 힘들 때에는 종을 안고 하소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종소리를 몸으로 느끼는 것, 즉 종과 한 몸이 돼야 소원이 이루어진다며 웃는다.

종을 치는 비법이 별도로 있을까. 궁금해서 물었더니 “종을 치는 방법을 말로 설명하긴 어렵다. 그날의 기온, 습도, 기압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종을 치는 의미를 마음에 담아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 “처음 보신각종 타종을 했을 때 궁합이 맞는다는 숙명 같은 느낌을 받았다. 종도 영혼이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알았다.”고 덧붙인다. 그는 종을 칠 때마다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정성을 다한다.

보신각 주변에 야간 취객들은 없을까. 있으면 어떻게 대응할까.

“(취객들이)많이 있습니다. 매뉴얼 대로 행동을 하지요. 먼저 호루라기를 붑니다. 그래도 안 나갈 경우 ‘여기는 문화재 보호구역’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요. 그러면서 ‘종에 관심이 있으면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11시 40분까지 오세요. 그때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소망을 물었더니 “영원히 ‘종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나서 스승님의 손자에게 종지기를 물려주는 것”이라며 활짝 웃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신철민 종지기는]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경동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문화재와 범종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관광학을 전공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문화재 공부를 했다. 그러던 2006년 중반 무렵 보신각 타종행사 자원봉사로 보신각종과 인연을 맺었다. 그해 보신각에서 4대째 종지기로 가업을 이어온 스승이 세상을 떠나자 유언대로 그 뒤를 이어 평생 종과 함께 할 것을 다짐했다. 또 스승의 유언으로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 역사문화재과 공무원 신분으로 종 관리를 맡아오고 있다. 2006년 12월 31일부터 제야의 타종행사를 맡았다. 이후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 상설 타종행사를 주관하고, 그의 제야의 타종은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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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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