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전 살인사건 “죽기 전 무죄확정이 소원”

39년 전 살인사건 “죽기 전 무죄확정이 소원”

입력 2011-10-12 00:00
업데이트 2011-10-12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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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무죄 났지만 대법원서 2년8개월째 심리중

1972년 ‘춘천 경찰간부 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정원섭(77·당시 38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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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5년간 복역하다 모범수로 석방된 후 재심을 통해 2008년 36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그가 법정에서 흘린 뜨거운 눈물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정씨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1, 2심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의 연이은 항소와 상고로 사건이 대법원에 2년8개월째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정씨는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말은 빨리 판결을 내달라는 부탁뿐”이라며 “죽기 전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다”고 말했다.

평범한 만화방 주인이던 정씨가 살인범으로 몰린 것은 순식간이었다.

경찰은 1972년 9월 춘천시 우두동 논둑에서 9세 여아를 성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범인으로 정씨를 지목했다. 정씨의 자백과 목격자 진술 등이 증거로 제시됐다.

당시 피해자는 춘천 시내 파출소장의 딸. 내무부장관이 ‘전국 4대 강력사건’으로 규정하고 ‘시한 내 검거령’까지 내렸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정씨는 “기한 안에 범인을 잡지 못하면 수사관계자를 문책하겠다는 지침에 쫓겨 경찰이 사건을 조작하기 시작했다”며 “5일간 온갖 욕설과 폭행을 당하며 조사를 받았고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피해자가 정씨의 만화방으로 가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자 진술과 살해 장소에서 발견된 정씨의 물건 등도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로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간 복역한 정씨는 모범수로 가석방된 후 무죄를 호소하며 사방으로 뛰어다녔고 법원은 사법 사상 극히 이례적으로 일반 형사사건에 대해 재심 개시를 결정, 36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1, 2심 재판부는 “경찰조사에서 가혹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수사기관의 증거는 적법절차에 반하는 중대한 하자가 있어 증거능력이 없거나 증명력이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무죄라고 확증할 만한 새로운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검찰의 상고로 이 사건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래서 올해 77세, 백발노인이 된 정씨의 신분은 아직도 ‘살인 전과자’다.

정씨는 여태 아무런 답이 없는 법원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간 변호인이 선고날짜를 지정해달라는 신청서를 내고 정씨도 탄원서를 제출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대법원은 법률심 기관이 아니냐”며 “내 사건이 3년씩이나 고민할 사안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인지…”라며 답답해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심리할 사안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하지만 변호인인 임영화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3년 가까이 심리 중인 사건은 극히 드물다”며 “간첩단 사건 등 정권적 차원에서 피해를 입은 과거사 재심에서는 신속히 무죄를 선고했음에도, 정씨 사건과 같은 일반 형사 사건에 대해서는 판단을 지나치게 미루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5일 있었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학재 의원도 정씨 사건에 대해 조속히 선고기일을 지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정씨는 “여생만이라도 살인자가 아닌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다”며 “하루빨리 복권이 돼 내년 총선 투표에는 참여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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