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근혜)가 11일 당 정강의 ‘보수’ 표현 삭제를 공식화해 당내 파장이 일고 있다.
비대위는 보수 표현 삭제를 골자로 한 정강 개정안 초안을 마련했다고 비대위 관계자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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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 정강개정소위는 이날 오전 개정안 초안을 논의한 뒤 비대위 전체회의에 넘길 예정이다.
개정안에는 ‘선진화’ 표현과 함께 ‘포퓰리즘에 맞서’ 용어도 빠졌다.
대신 개정안에는 공정경쟁, 공정시장, 분배정의 등의 표현이 강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강개정소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보수 표현을 빼는 대신 자유주의, 시장경제 바탕, 안보 등의 내용을 그대로 담아 보수 가치를 충분히 살렸다”고 말했다.
현 정강 정책은 전문(前文) 첫머리에서 한나라당을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의 비약적 발전을 주도해온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는…”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 세력인) 우리는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었고 이 성과를 토대로 나라를 선진화하는 데 모든 당력을 집중한다”는 목표를 밝히고 있다.
비대위가 보수 표현을 삭제키로 한 것은 ‘한나라당’이라는 간판 못지않게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수’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는 ‘진보=합리’, ‘보수=꼴통’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현실에서 이를 그대로 두고서는 총ㆍ대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 힘들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보수표현 삭제를 주창해 온 김종인 비대위원은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보수라는 말을 넣느냐 안 넣느냐는 의미가 없으며, 보수라는 이야기를 하면 젊은 층은 ‘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시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어떤 정당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는 유권자가 평가하는 것이지 정당 스스로 표방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수표현 삭제에 대한 당내 반발이 거세 인적쇄신으로 불거진 논란이 자칫 이념 논쟁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비대위의 보수ㆍ선진화 표현 삭제는 사실상 이명박 정부와의 단절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돼 쇄신국면에서 여권이 분열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뭔 보따리장수들이 들어와서 주인들을 다 휘젓고 다니느냐”고 비판했다.
쇄신파 정두언 의원도 “사람이 문제지 정강정책이 무슨 문제냐. (보수표현 삭제는) 웃기는 짓”이라면서 “정강정책을 바꾸는 것에 반대한다. 제대로 된 보수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친박 최경환 의원은 “한나라당은 역사가 오래된 정당이고 그런 보수의 가치를 보고 모인 당원들도 많은 만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와 함께 당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친이계 한 의원은 “우리가 그동안 지켜 온 당의 기본 가치를 완전히 부인하겠다는 것 아니냐”면서 “현 정부와 인위적으로 차별화하기 위해 보수 표현도 빼고 선진화 용어도 빼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수도권의 재선 의원은 “보수 표현 삭제는 비대위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의원총회를 열어 공식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며 의총 소집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