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야당 총재를 할 때지. 공천(公薦)할 때가 되면 동교동 거실에 있는 값 나가는 도자기나 가구는 싸구려로 싹 바꿔 놔. 평소에는 DJ 앞에서 꼼짝도 못하던 인사들이 공천이 위태롭거나 떨어졌다 하면 동교동으로 몰려와 난장을 쳐. 거실에 보이는 물건들은 다 부숴버려요. 그러면 DJ는 짐짓 모른 척 가만히 있어. 말리는 사람도 없고 말이지. 선거 앞두고 공천 때면 천하의 DJ도 집안 물건들이 남아 나지 않는다니까. 공천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아.”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의 한 중진 의원이 기자에게 건넨 DJ의 일화다. 3김 시대의 상징으로 ‘제왕적’ 총재였던 DJ도 공천 때마다 극심한 몸살을 앓았던 것이다. 여의도 정치판에서 공천은 현역 의원뿐 아니라 구름같이 몰려드는 정치 지망생에게 ‘죽고 사는’ 문제다. 특히 비례대표는 ‘공천 뇌물’ 의혹이 끊이지 않는 병폐였다. 오죽하면 ‘전(錢)국구’, ‘돈비례’라는 오명이 사라지지 않을까.
●“玄의원 공천 뇌물은 빙산의 일각”
현영희 의원의 금품 로비 의혹에 휩싸인 새누리당은 흉흉하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10일 기자와 만나 “현 의원의 공천 뇌물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4·11 총선 때 공천을 신청한 비례대표 중에서 상당수가 돈을 썼다는 얘기가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다.”며 “오랜 정당 경험으로 볼 때 아마 걸리면 다 들통날 행태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 의원의 경우 아랫사람을 잘못 쓴 운 나쁜 사례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새누리당 B의원은 “이번에 비례대표에 당선된 모씨가 20억원을 초등학교 동창인 친박(친박근혜)계 실세에게 줬다는 얘기부터 또 다른 인사가 친박계 실세와 사돈지간인데 50억원을 상납했다는 소문까지 파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비례대표 공천 명단을 봐도 “대표성이나 전문성과 거리가 멀지만 선관위에 신고된 재산 내역을 보면 어마어마한 자산가들이 적지 않다.”면서 “박근혜 후보의 대선자금 조성용 공천이 아니냐는 의혹이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의 평균 재산은 65억 4258만원, 자유선진당 40억 4349만원, 민주당 6억 4134만원, 통합진보당 2억 9145만원의 순이었다.
자유선진당(현 선진통일당) 비례대표를 했던 박선영 전 의원은 최근 공개적으로 비례대표의 공천헌금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고 고발했다. 박 전 의원은 “정당이 교회도 아니고 무슨 헌금을 내냐.”며 “공천헌금이 아니라 공천 뇌물이 맞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비례 1번부터 10번까지는 얼마, 11번부터 20번까지는 얼마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며 “내가 알기로는 비례대표뿐 아니라 지역구 공천을 받을 때도 굉장히 많은 비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 지망생들의 여의도 입성 루트인 비례대표는 출발부터 ‘돈’이기 일쑤다. 이번 4·11 총선 때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접수 비용은 후보당 50만원, 민주당은 300만원이었다. 새누리당 신청자는 616명, 민주당이 282명으로 양당이 접수비로 거둬들인 돈만 각각 3억 800만원, 8억 4600만원에 달했다.
●대가성 입증 쉽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
비례대표 자리를 노리는 ‘낙하산’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이른바 ‘특별당비’라는 정체불명의 돈이 오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2000년 이전에는 여야 가릴 것 없이 특별당비가 관행처럼 당연시될 정도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18대 총선 때 친박연대의 공천헌금 파문.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30대 초반의 양정례 당선자가 특별당비 명목으로 17억원을, 김노식 의원이 15억원을 서청원 당시 대표에게 건넨 것으로 드러나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도 18대 비례대표를 추천하며 공천헌금을 수수한 혐의로 2009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8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30억원을 받은 비리 사건이 충격을 줬다.
총선뿐 아니라 지방선거도 도마에 올랐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직 여주군수가 5만원권 뭉칫돈 2억원을 한나라당 의원에게 공천 대가로 건네려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초유의 사태도 있었다.
현행 공직선거법 47조 2항에는 정당의 후보자 추천 관련 금품수수 금지 조항이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 처벌되려면 대가성을 입증해야 해 법적 차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총선 때만 ‘공천 보은금’이 건네질까. 여의도 정가에서는 “수시로 이뤄진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게 당내 실력자인 중진 의원들의 출판기념회.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는 연중 수시로 국회 의원회관, 헌정기념관, 국회도서관에서 열린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출판기념회의 수입과 사용 내역은 공개하지 않아도 돼 정치자금의 법적 제약이 없다. 지난해 11월 당시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 출판기념회에는 5000여명이 몰릴 정도로 성황을 이뤄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출판기념회의 풍경도 비슷하다. 줄지어 선 참석자들이 책을 받은 뒤, 판매 대금함에 흰 봉투를 쏟아 넣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봉투 안에 든 금액은 참석자와 출판기념회를 주관한 의원 당사자만 안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를 원하는 정치지망생 상당수가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진 의원들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얼굴 도장을 찍고 상당한 금액을 후원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천 전이든 공천이 이뤄지는 과정이든, 그 이후의 보은성 후원이든 비례대표 공천의 대가로 ‘돈’은 돌고 돌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총선 3개월 전 비례명단 공개 제도화”
비례 공천의 악습은 왜 되풀이될까. 김용호 인하대 교수는 “비례대표 후보가 밀실에서 결정되는 시스템과 공천권을 중앙당이 쥐고 있는 구조 때문에 줄을 대려는 문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공천 권한을 당원들에게 나눠주거나 유권자가 직접 공천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대 최다 의석인 300석으로 문을 연 19대 국회에서 지역구 의원은 246명. 비례대표는 54명이다. 현 선거제도는 소선거구 단순 다수대표제와 정당투표가 혼용돼 있다. 지역구 선거에서 1등만 당선되는 만큼 이를 통해 발생되는 사표(死票)와 직능·계층의 대표성이 소외될 수 있는 부작용을 보정하자는 게 비례대표제의 취지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에서는 비례대표가 계파 간 이익에 따라 나눠 먹는 전리품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다. 당내 계파에 할당된 몫으로 여겨지다 보니 계파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친다. 어느 세력의 인사가 공천됐는지, 순번은 빠른지를 놓고 당내 실력자 간 밀실 담판이 벌어진다. 통합진보당의 19대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 역시 정파 간 세력 확장 경쟁의 극단적 사례다. 통진당의 정파 간 내홍은 분당으로 치닫고 있다.
비례대표 공천 자체가 정쟁거리가 되면서 비례대표 후보 명단 역시 선거가 임박해서야 확정된다. 유권자로서는 당의 간판만 보고 찍는 모양새가 된다. 비례대표 검증 자체가 구조적으로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다. 19대에서 여야가 앞다퉈 청년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실효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다.
비례대표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현 공천 시스템의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윤성이 경희대 교수는 “비례대표 당선자 명단을 결정하는 방식이 지금처럼 당 지도부에 일임되면 지역구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며 “현행 폐쇄형 방식을 유권자가 비례대표 명단을 통해 순위를 직접 정할 수 있도록 개방형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비례대표 공천이 신뢰받을 수 있도록 유권자 앞에 선정 기준을 객관적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 3개월 전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공개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공천 비리에 대한 내부 고발 포상금을 더 확대하는 등 감시 체계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환·황비웅·이범수기자 ipsofacto@seoul.co.kr
●“玄의원 공천 뇌물은 빙산의 일각”
현영희 의원의 금품 로비 의혹에 휩싸인 새누리당은 흉흉하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10일 기자와 만나 “현 의원의 공천 뇌물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4·11 총선 때 공천을 신청한 비례대표 중에서 상당수가 돈을 썼다는 얘기가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다.”며 “오랜 정당 경험으로 볼 때 아마 걸리면 다 들통날 행태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 의원의 경우 아랫사람을 잘못 쓴 운 나쁜 사례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새누리당 B의원은 “이번에 비례대표에 당선된 모씨가 20억원을 초등학교 동창인 친박(친박근혜)계 실세에게 줬다는 얘기부터 또 다른 인사가 친박계 실세와 사돈지간인데 50억원을 상납했다는 소문까지 파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비례대표 공천 명단을 봐도 “대표성이나 전문성과 거리가 멀지만 선관위에 신고된 재산 내역을 보면 어마어마한 자산가들이 적지 않다.”면서 “박근혜 후보의 대선자금 조성용 공천이 아니냐는 의혹이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의 평균 재산은 65억 4258만원, 자유선진당 40억 4349만원, 민주당 6억 4134만원, 통합진보당 2억 9145만원의 순이었다.
자유선진당(현 선진통일당) 비례대표를 했던 박선영 전 의원은 최근 공개적으로 비례대표의 공천헌금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고 고발했다. 박 전 의원은 “정당이 교회도 아니고 무슨 헌금을 내냐.”며 “공천헌금이 아니라 공천 뇌물이 맞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비례 1번부터 10번까지는 얼마, 11번부터 20번까지는 얼마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며 “내가 알기로는 비례대표뿐 아니라 지역구 공천을 받을 때도 굉장히 많은 비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 지망생들의 여의도 입성 루트인 비례대표는 출발부터 ‘돈’이기 일쑤다. 이번 4·11 총선 때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접수 비용은 후보당 50만원, 민주당은 300만원이었다. 새누리당 신청자는 616명, 민주당이 282명으로 양당이 접수비로 거둬들인 돈만 각각 3억 800만원, 8억 4600만원에 달했다.
비례대표 자리를 노리는 ‘낙하산’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이른바 ‘특별당비’라는 정체불명의 돈이 오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2000년 이전에는 여야 가릴 것 없이 특별당비가 관행처럼 당연시될 정도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18대 총선 때 친박연대의 공천헌금 파문.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30대 초반의 양정례 당선자가 특별당비 명목으로 17억원을, 김노식 의원이 15억원을 서청원 당시 대표에게 건넨 것으로 드러나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도 18대 비례대표를 추천하며 공천헌금을 수수한 혐의로 2009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8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30억원을 받은 비리 사건이 충격을 줬다.
총선뿐 아니라 지방선거도 도마에 올랐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직 여주군수가 5만원권 뭉칫돈 2억원을 한나라당 의원에게 공천 대가로 건네려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초유의 사태도 있었다.
현행 공직선거법 47조 2항에는 정당의 후보자 추천 관련 금품수수 금지 조항이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 처벌되려면 대가성을 입증해야 해 법적 차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총선 때만 ‘공천 보은금’이 건네질까. 여의도 정가에서는 “수시로 이뤄진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게 당내 실력자인 중진 의원들의 출판기념회.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는 연중 수시로 국회 의원회관, 헌정기념관, 국회도서관에서 열린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출판기념회의 수입과 사용 내역은 공개하지 않아도 돼 정치자금의 법적 제약이 없다. 지난해 11월 당시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 출판기념회에는 5000여명이 몰릴 정도로 성황을 이뤄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출판기념회의 풍경도 비슷하다. 줄지어 선 참석자들이 책을 받은 뒤, 판매 대금함에 흰 봉투를 쏟아 넣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봉투 안에 든 금액은 참석자와 출판기념회를 주관한 의원 당사자만 안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를 원하는 정치지망생 상당수가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진 의원들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얼굴 도장을 찍고 상당한 금액을 후원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천 전이든 공천이 이뤄지는 과정이든, 그 이후의 보은성 후원이든 비례대표 공천의 대가로 ‘돈’은 돌고 돌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총선 3개월 전 비례명단 공개 제도화”
비례 공천의 악습은 왜 되풀이될까. 김용호 인하대 교수는 “비례대표 후보가 밀실에서 결정되는 시스템과 공천권을 중앙당이 쥐고 있는 구조 때문에 줄을 대려는 문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공천 권한을 당원들에게 나눠주거나 유권자가 직접 공천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대 최다 의석인 300석으로 문을 연 19대 국회에서 지역구 의원은 246명. 비례대표는 54명이다. 현 선거제도는 소선거구 단순 다수대표제와 정당투표가 혼용돼 있다. 지역구 선거에서 1등만 당선되는 만큼 이를 통해 발생되는 사표(死票)와 직능·계층의 대표성이 소외될 수 있는 부작용을 보정하자는 게 비례대표제의 취지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에서는 비례대표가 계파 간 이익에 따라 나눠 먹는 전리품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다. 당내 계파에 할당된 몫으로 여겨지다 보니 계파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친다. 어느 세력의 인사가 공천됐는지, 순번은 빠른지를 놓고 당내 실력자 간 밀실 담판이 벌어진다. 통합진보당의 19대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 역시 정파 간 세력 확장 경쟁의 극단적 사례다. 통진당의 정파 간 내홍은 분당으로 치닫고 있다.
비례대표 공천 자체가 정쟁거리가 되면서 비례대표 후보 명단 역시 선거가 임박해서야 확정된다. 유권자로서는 당의 간판만 보고 찍는 모양새가 된다. 비례대표 검증 자체가 구조적으로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다. 19대에서 여야가 앞다퉈 청년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실효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다.
비례대표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현 공천 시스템의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윤성이 경희대 교수는 “비례대표 당선자 명단을 결정하는 방식이 지금처럼 당 지도부에 일임되면 지역구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며 “현행 폐쇄형 방식을 유권자가 비례대표 명단을 통해 순위를 직접 정할 수 있도록 개방형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비례대표 공천이 신뢰받을 수 있도록 유권자 앞에 선정 기준을 객관적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 3개월 전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공개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공천 비리에 대한 내부 고발 포상금을 더 확대하는 등 감시 체계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환·황비웅·이범수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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