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혼선 없게 칸막이 없애라” 언급 열흘도 되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이 정책에 혼선된 메시지가 나오지 않도록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라고 주문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외교부와 통일부가 엇박자를 냈다.27일 외교부·통일부의 합동 업무보고에 앞서 외교부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을 상대로 비공식 브리핑을 갖고 통일부와의 사전 조율 없이 실제 업무보고에는 없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3단계’ 추진안을 설명하면서다.
이 관계자는 남북 간 합의를 준수하며 인도지원 등을 통해 신뢰를 쌓는 1단계, 사회·경제적 인프라 협력을 구축하는 2단계, 대규모 대북 지원을 하는 3단계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추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3단계는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일부도 출입기자들에게 업무보고 내용을 사전 브리핑했지만 이 당국자가 밝힌 3단계 추진안에 대한 설명은 포함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날 석간 보도에서부터 발생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근거로 언론이 정부의 대북·외교 기조를 ‘선(先) 신뢰 구축, 후(後) 비핵화’로 보도하면서 혼선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비핵화 문제는 뒤로 미루고 대북 지원부터 추진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통일부는 외교부 측에 해명을 요청하는 한편 이 같은 내용은 업무보고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한번 발생한 혼선은 쉽사리 정리되지 않았다. 통일부 관계자는 “(대북정책은) 외교부가 설명할 일이 아니다”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부처 간 혼선이 확산되자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28일 오후 “박근혜 정부의 대북 기조는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선지원 이런 게 아니라 ‘선안보, 후지원’”이라면서 “대북 메시지는 일관되어야 한다. 북한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교통정리를 했다.
외교·통일·안보 부처 간 엇박자는 처음이 아니다. 2011년 6월 11일 북한 주민 9명이 집단 귀순했을 때 주무 부처인 통일부 장관만 닷새 동안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부처 간 이기주의 때문에 정보와 정책 공유, 사전 업무 조율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지난 27일 개성공단 출입경을 관리하는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차단한 긴급한 상황에서도 국방부는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고, 통일부는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채널이 있기 때문에 개성공단은 괜찮다”며 각각 다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국방부 측 설명에 대해 “국방부가 (개성공단의) 주무부처는 아니지 않으냐”고 되묻기도 했다.
북한이 군 통신선을 차단하겠다고 통보한 사실을 27일 오전 11시 30분쯤 인지하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고 태연히 개성공단 국제화 방침 등 업무보고 내용을 공식 브리핑한 통일부의 안일한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오후 3시 기자회견을 통해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설명하면서 북한의 통신선 차단 사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2013-03-29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