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통일] (1) 김명섭 연세대 통일연구소장

[나와 통일] (1) 김명섭 연세대 통일연구소장

입력 2011-03-02 00:00
업데이트 2011-03-0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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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 아닌 나와 너의 소원 서로 다른 통일 교집합 찾아가자”

한반도의 통일을 가져오는 힘은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국민의 가슴속에서 나온다. 1945년 해방과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남북한의 정권은 통일보다 분단상황 관리에 치중해 왔다. 유엔 등 국제사회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국도 한반도의 통일이 아니라 현상유지에 주력했다. 그런 상황에서 남북 분단은 고착화돼 왔고, 통일에 대한 열망과 기대감은 낮아져 갔다. 국민은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 서울신문은 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나와 통일’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국가나 정부가 아니라 국민 각자의 주관적 시각에서 통일을 얘기해 보는 소통의 마당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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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49세 ▲판테온소르본대학원 정치학 박사 ▲한신대 국제학부장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연구이사(전)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약력 ▲49세 ▲판테온소르본대학원 정치학 박사 ▲한신대 국제학부장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연구이사(전)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듣고 부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는 ‘우리의 소원은 민주’라는 개사곡과 함께 친숙한 노래였다. 2011년의 시점에서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힘차게 부를 수 있을까? 더 이상 ‘우리’라는 막연한 이타심에 호소하는 통일이 아니라 서로의 이기심을 인정한 통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소원으로서의 통일과 너의 소원으로서의 통일을 보다 명확히 하고 서로의 교집합을 찾아나가는 것이 더 확실한 통일의 길일지도 모른다.

약 30년간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면서 통일은 나의 중요한 학문적 관심사였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정치외교학의 길로 나를 인도했다고도 볼 수 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1907년 남강 이승훈 선생이 평안도 정주에 세운 학교였다. 서울로 이주한 학교의 운동장에 서서 씨알 함석헌 동창회장의 강연을 들었다. 고당 조만식 선생의 정신을 배우고, 나중에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된 고당의 제자 최용건이 김일성의 편에 섰던 일화도 들으면서 통일의 꿈을 키웠다.

대학에서 통일에 대한 설익은 열정을 학문적으로 승화시키면서 분단구조화 과정과 6·25전쟁의 상관관계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을 썼고, 국가들 간의 통일을 이루어 가고 있던 유럽의 현장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코리아의 문명적·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관심을 키웠으며, 냉전사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문명론적 관점에서 코리아의 분단과 통일을 다룬 논문들을 발표했다.

나에게 통일은 무엇보다 내가 속한 언어공동체에 대한 지정학적 관심이다. 물론 하나의 언어공동체가 반드시 하나의 정치공동체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독일어권인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통일을 말하면 나치잔당 취급을 받기 쉽고, 영어를 쓰는 영국과 미국이 통일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북한에서 사용되는 ‘민주’나 ‘평화’와 같은 단어들이 한국에서 사용되는 ‘민주’나 ‘평화’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를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공동체는 소중하다. 나는 말과 글을 통해 존재한다. 내가 말하고, 글을 쓰기도 하지만,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는 로고스적 존재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만주’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낮아지고 ‘중국 동북지방’ 또는 ‘둥베이지방’이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글공동체에 대한 시공간적 인식이 희미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것은 나를 구성하고 있는 기억의 일부, 어쩌면 나 자신의 일부가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코리아의 평화 통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헌법적 의무인 동시에 나의 존재론적 관심이다. 세계화 시대를 맞으면서 “마누라만 빼고 모두 바꿔야 산다.”는 경영자의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인간에게는 손절매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코리아가 지정학적 종심이 얕은 이유로 자기 표준만을 고집하면 망하고, 부단히 세계적 문명 표준을 따라잡아야 하겠지만,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상실한다면 경제적 성공과 행복의 주체도 모호해질 수 있다.

나의 소원으로서의 통일은 세 개의 북한(북한주민, 북한정권, 북한국가)을 분리해 접근하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이다. 코리아의 최저치인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참상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이산가족들에 대한 관심, 탈북민들에 대한 관심, 그리고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 상황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북한 주민들의 손에 확실하게 전달될 수 있는 원조를 제공하고 그들의 마음속에 코리아의 독립, 광복, 분단,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에 관한 진실의 씨앗들을 심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붕괴한 이후에도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서의 북한과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이(統二 혹은 統異)를 위한 국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2011-03-0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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