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실용 목표는 항아리형 사회”

“중도실용 목표는 항아리형 사회”

입력 2010-09-20 00:00
수정 2010-09-20 00:1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정정길 前 대통령실장, 중도실용 해설서 공동 출간

“중도 실용의 궁극적 목표는 기회의 형평성과 개인의 존엄성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어, 국민 대다수가 중산층의 삶을 누리는 ‘항아리형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지 확대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이 최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전문가들이 본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중도실용을 말하다.’라는 책을 후배학자들과 함께 펴냈다.

이 책은 지난 17일 청와대 수석 및 행정관 전원에게 추석선물로 배포됐다.20일 국무회의때는 장관들에게도 전달된다. 정 전 실장은 17일 오후 자필 사인이 들어 있는 책을 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환경비서관을 통해 이 대통령에게도 전달했다.

정 전 실장은 책에서 “승자독식이 아니라 큰 기업과 작은 기업이 상생하며, 개천에서도 용이 날수 있는 패자부활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면서 “통념적 의미의 좌우 대결은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보면 모두 지양되고 승화돼야 할 극복의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도실용주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전부터 일관되게 추진한 이 대통령의 개인적인 신념”이라면서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때 했던 청계천 복원, 버스운송체계개편, 서울 숲 조성 등이 이념과 관계없는 대표적인 중도실용정책의 사례”라고 소개했다.

전직 대통령실장이 아니라 학자의 입장에서 책을 썼다는 그는 집필 과정에서 불교의 중관론(中觀論), 유학의 중용(中庸), 세종과 정조 시대의 실용적 국정운영, 실학파 사상, 헤겔의 변증법, 등에 대해서도 다시 심도 있게 검토했다. 정 전 실장은 “중도실용의 바람직한 정책조합을 찾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면서 “자칫 중간영역 적당한 곳에서 인기영합주의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기 쉽다는 점을 정책 결정자들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필에는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등 쟁쟁한 중진 학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이희동 서울시의원, 서울시경계선지능인 지원센터 방문… 강동구 경계선지능인 지원체계 구축 논의

이희동 서울시의원(강동1,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3일 서울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를 방문했다. 방문에는 김태현 강동구의원과 경계선지능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함께했으며, 센터 관계자로부터 광역센터 운영 현황과 서울시의 경계선지능인 관련 정책을 듣고 강동구 차원의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경계선지능인은 지능지수(IQ) 71~84 수준으로 지적장애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학습과 사회 적응, 취업 등 일상생활 전반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장애인 복지 등 기존 제도의 지원 대상에서 벗어나 있어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번 현장 방문은 강동구가 경계선지능인 기본조례 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마련됐다. 현재 강동구는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 조례’만을 갖추고 있어 지원 대상과 범위가 평생교육 영역에 국한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에 구는 해당 조례를 기본조례로 전면 통합해 단순 교육 지원을 넘어 경계선지능인의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다각적 지원 근거를 정립할 방침이다. 아울러 기본조례 제정과 연계해 강동구 차원의 경계선지능인 전담 지원센터 설립 방안도 함께 논의 중이다. 이날 광역센터 측은 현재 운영 상황과
thumbnail - 이희동 서울시의원, 서울시경계선지능인 지원센터 방문… 강동구 경계선지능인 지원체계 구축 논의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2010-09-20 2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 2026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
  •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