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밉지 않다”… 말 없이 말했다

“사람은 밉지 않다”… 말 없이 말했다

입력 2011-03-17 00:00
수정 2011-03-17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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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 수요집회서 춤·노래 대신 ‘침묵 시위’

“난 일본군의 칼을 맞고도 살아남았어. 그 원한이 평생 가슴에 사무치지만, 그들도 인간인 걸 어떡해. 너무 불쌍해. 울지 말고 힘내서 일어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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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희생된 일본인들을 추모하는 침묵집회를 열고 애도를 표하고 있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16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희생된 일본인들을 추모하는 침묵집회를 열고 애도를 표하고 있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16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다섯명이 매주 수요일마다 그래 왔던 것처럼 건물에 내걸린 일장기를 바라보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하지만 집회 때마다 항의의 표시로 할머니들 손에 들려있던 노란색 나비모양의 손 팻말은 없었다. 대신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희생자 명복을 빕니다. 일본 시민 여러분 힘내세요.’라고 적은 손 팻말이 보였다. 집회의 시작을 알리던 대학생들의 흥겨운 춤과 노래도 없었다. 조용한 음악만이 집회 현장을 채웠다. 이날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930차 수요집회’는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침묵시위’로 진행됐다. 위안부로 모진 고초를 겪었던 이옥선(84)·이용수(84)·길원옥(84)·김순옥(89)·박옥선(86) 할머니가 참석했다.

할머니들은 정신대대책문제협의회 관계자가 일본인의 안전과 무사 구출을 기원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낭독하자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10분간 묵념을 했다. 평소의 집회였다면 주먹을 불끈 쥐고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고 외쳤을 할머니들이었다.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에 대한 한(恨)으로 가득한 가슴으로 일본인들이 겪고 있는 시름과 고통을 끌어안았다. 길원옥 할머니는 “우리가 (일본에 짓밟혀) 아팠던 것이 생각나지만, 고통받는 일본 사람들이 빨리 힘내야 할 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밉지 않다.”면서 “진심으로 일본 지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힘내세요!”라고 외치는 이 할머니의 음성은 울먹임으로 떨리고 있었다. 정대협 허미례 간사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에서 침묵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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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2011-03-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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