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개살구’ 전자소송

‘빛 좋은 개살구’ 전자소송

입력 2011-08-15 00:00
업데이트 2011-08-1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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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없는 소송’과 소송 절차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도입된 전자소송이 서류더미에 파묻히고 있다. 재판을 건 원고가 전자소송을 신청해도 피고가 동의하지 않아 전자소송이 겉돌고 있다. 전자소송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법원의 적극적인 홍보와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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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 5월 도입된 민사 전자소송이 시행 100일가량 지났지만 피고가 전자소송에 동의하는 ‘동의율’은 극히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고 측이 전자소송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면 일반 소송으로 진행된다. 이럴 경우 파일로 접수된 소장을 모두 종이로 출력한 뒤 피고에게 송달해야 된다. 민사소송을 담당하는 중앙지법의 한 직원은 “전자소송 재판부는 일이 많아 직원들이 기피한다.”면서 “소장을 일일이 출력하는 등 종이 소비량이 많아 A4용지가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전자소송을 담당하는 한 부장판사도 “동의율이 저조해 변론 준비 기일마다 피고 측의 변호인을 설득하곤 한다.”고 사정을 전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피고측이 전자소송을 기피하는 바람에 서류더미에 질식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전자소송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시스템이 불편하거나 잘 모르기 때문. 법령상 전자소송이 의무화된 국가·지자체·공공기관 등을 상대로 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전자소송을 꺼리고 있다. 한 변호사는 “파일로 소장이나 증거자료를 보면 눈이 피곤하다.”면서 “소장을 첨부하려고 해도 2000자까지 제한돼 있는 점도 불편하다.”고 꼬집었다. 다른 변호사는 “업계에서 전자소송에 관심 있는 변호사가 드물다.”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이 변호사와 법무법인 사무실 33곳을 상대로 전화설문한 결과 “전자소송으로 인해 특별히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고 답혔다. 향후 전자소송을 이용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상당수가 ▲시스템이 불안정해 제출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종이 기록을 보는 것이 편리하다고 답했다. 법관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법원행정처가 전국 민사 전자소송 전담재판부 법관 44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종이기록보다 모니터로 보는 것이 전체적으로 가독력이 떨어지며, 복사본인 경우 더 심각하다.”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가장 불편한 점으로 꼽았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2011-08-1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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