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목한 황당 ‘학교폭력’ 주범 정체는…

정부가 지목한 황당 ‘학교폭력’ 주범 정체는…

박건형 기자
입력 2012-01-27 00:00
수정 2012-01-2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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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 게임·인터넷 지목…학계 “상관성 확실치 않아”

 “결국 인터넷게임을 실정의 총알받이로 삼겠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 폭력의 주요 원인으로 ‘게임·인터넷 중독’을 지목해 강력한 규제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서자 학계와 게임업계 등이 반발하고 있다.


교과부는 인터넷 중독이 청소년의 지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일부 연구와 학교 폭력 가해학생 상당수가 인터넷게임과 연관이 있다는 자체 판단을 내세워 나이에 따라 인터넷 접속 시간을 제한하는 ‘쿨링오프제’ 등의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게임이나 인터넷 중독이 폭력의 근본 원인이 아니다.”라면서 “교과부가 학부모들이 우려하는 인터넷과 인터넷게임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27일 교과부 등에 따르면 게임·인터넷 중독이 학교 폭력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해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의 가해자들이 인터넷게임을 즐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후 이달 중순 서울성모병원 연구팀이 “온라인게임 중독이 어린아이의 사회적 인지 능력과 지적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자 게임·인터넷 중독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해당 연구팀의 논문은 “게임·인터넷 중독과 지능과의 명확한 상관관계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학계에서는 게임·인터넷 중독과 폭력의 상관성이 확실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서유헌 서울대의대 교수는 “인터넷게임 중독과 폭력성과의 관계가 산발적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정확한 상관관계는 아직 알 수 없다.”면서 “컴퓨터를 못 하게 한다고 학교 폭력이 사라지겠느냐.”고 반문했다. 유희정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도 “일부 게임 중독자의 뇌 구조가 비정상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게임 중독이 원인인지, 개인이 가진 취약성이 원인인지는 밝혀진 바 없다.”고 지적했다.

 폭력성과 게임 중독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현 건국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게임 중독이 학교 폭력의 원인이라는 시각은 ‘TV를 많이 보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가설과 같다.”면서 “폭력적인 프로그램이 폭력성을 키운다는 것은 과장”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게임 중독이 폭력성을 키운다면 프로게이머들은 모두 폭력적인 사람이라는 뜻이냐.”면서 “폭력의 원인을 단순히 게임 중독으로 모는 것은 문제를 단순화하려는 시도”라고 꼬집었다.

 최근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주재한 게임 중독 대책 간담회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명확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정부 관계자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더라.”면서 “학교 폭력의 근본 원인을 찾기보다 게임 중독 대책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럴듯한 해결책으로 삼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건형·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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