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반하고 사법권 독립침해”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에 따른 재심청구 사건을 기각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했더라도 법률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위헌인 한정위헌이라면 해당 법률에 근거한 판결의 재심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최고 사법기관 지위를 둘러싼 두 기관의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대법원 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8일 KSS해운이 “옛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제23조가 효력을 잃은 만큼 이에 근거한 법인세 부과를 취소해 달라”며 서울 종로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 재심청구 소송에서 청구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 소송은 헌재가 지난해 7월 KSS해운과 교보생명이 옛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제23조에 대해 청구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사건이다.
당시 헌재는 이 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부칙 조항 역시 법적 효력을 잃었다고 전제한 뒤 “대법원이 실효된 부칙 조항을 유효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헌법상 권력 분립과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위배돼 위헌”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내리면서 “헌재는 법률의 위헌성 여부만 판단할 수 있고 법률 해석 기준을 법원에 제시할 권한은 없다”면서 “법률 조항의 특정한 해석, 적용만을 위헌으로 선언하는 한정위헌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결정 형식”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정위헌 결정은 헌법에 반하고 사법권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한정위헌은 법원을 기속하지 못하므로 확정 판결에 대한 재심 사유도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같은 한정위헌을 인용하면 사실상 또 하나의 심급이 생겨 4심제가 되는 결과가 돼 현행 사법 체계에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고 말했다.
헌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법원이 법률에 따라 판결한 만큼 재심청구인 측이 다시 헌재에 재판소원을 청구한다면 헌재도 법률에 따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법은 재판소원(법원의 재판을 헌재가 심리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지만 일부에서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헌재는 법원의 재판 결과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면 재판 결과를 취소할 수 있으나 법원이 조치에 불복할 방법은 없다. KSS해운의 법률 대리인 측은 이와 관련, “과거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무시한 대법원 확정 판결을 취소한 사례가 있는 만큼 이번 사안도 다시 헌재에 재판소원을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헌재는 지난해 5월 GS칼텍스와 SK리테일이 이번 사건과 같은 법 조항에 대해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도 같은 취지로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두 회사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토대로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날 판결로 한정위헌 결정이 재심 사유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한 터라 두 회사의 사건도 기각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2013-03-29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