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지하 400m 탄광 ‘이색 현장검증’

판사들, 지하 400m 탄광 ‘이색 현장검증’

입력 2013-10-09 00:00
수정 2013-10-0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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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으로 찾아간 법정
광산으로 찾아간 법정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 장준현(가운데) 부장판사와 좌우 배석판사가 8일 전남 화순군 화순광업소 갱도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재판부는 농지 소유주들이 광산 개발로 지표수가 빠져나가 농지가 황폐해졌다며 화순광업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민사소송에 대해 7일과 8일 현장에서 ‘찾아가는 법정’을 열어 심리재판 등을 진행했다.
화순 연합뉴스
갱도열차는 느린 속도로 내려갔다. 목적지는 지하 400여m. 경사 21도, 길이 2.5㎞ 철길을 따라 갱도 열차는 덜컹덜컹 내려갔다.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좁다란 갱도 안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전선과 배관이 빼곡하게 가득 찼고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20여분쯤 달리던 기차는 가파른 내리막에 멈춰 섰다. 그리고 3명의 판사가 내렸다. 8일 오전 전남 화순광업소 광산에서 3명의 판사가 ‘찾아가는 법정’을 열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25부 장준현 부장판사를 중심으로 좌우에 배석한 판사들은 지하 400m 갱도 안에서 원고와 피고 측의 주장을 꼼꼼히 들었다. 화순광업소의 탄광 개발로 농지 84필지가 황폐화됐다며 농지 소유주 50여명이 광업소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에 재판부는 원고 측의 주장대로 탄광 개발로 지표수가 고갈돼 농지가 황폐화됐는지 검증하기 위해 직접 현장을 찾았다. 현장 검증의 핵심은 광업소 측이 광산개발로 지표수를 고갈시켰는지 여부다.

저수조와 배수펌프 시설 규모, 배수관 크기 등을 꼼꼼히 따져 광업소 측의 광산개발로 지표수가 인위적으로 고갈됐는지를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판사들은 갱도 안의 물길을 되짚었다. 물이 고여 있는 저수조 사진을 찍고, 배수 펌프를 만져봤다.

복잡한 배관에서 지하수를 퍼내는 배관을 찾아내 귀 기울여 소리를 들어보기도 했다. 법복이 아닌 광부 작업복으로 모두 갈아입은 상태였지만 갱도 안에서 즉석 법정을 개정했다.

현장검증 과정에서 피고 측의 설명을 원고 측 변호사가 날카롭게 되받았다. 말싸움이 오가자 장 부장판사는 갱도 안 법정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하실 말씀 있으면 재판부에 발언요청을 하세요!”

장 부장판사는 꼼꼼하게 광산 관계자의 설명을 녹음기에 녹음했고, 현장검증 중간중간 상황을 요약 정리하는 발언을 녹음하기도 했다. 좌우 배석판사들은 부장판사 옆에서 카메라에 현장을 담았고, 배관의 크기, 저수조에 담긴 물의 양 등을 짐작해 메모하기도 했다.

재판부와 원고, 피고 측은 이렇게 약 3시간 동안 2.5㎞에 달하는 갱도 안을 갱도열차를 타고 맨 밑바닥부터 올라오며 꼼꼼히 살펴봤다.

재판부가 이날 갱도 안에서 둘러본 곳은 복암2사갱 15~18편, 복암 1사갱 6편에 있는 저수조와 펌프 기계실 등 모두 5곳이었다. 전날 오전 재판부는 화순광업소에서 변론기일을 진행했고, 오후에는 피해를 보았다고 원고 측이 주장하는 토지 84필지 등을 현장 검증했다.

장 부장판사는 “현장검증만으로는 원고나 피고 측의 주장을 입증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도 “재판부가 현장을 직접 봄으로써 실체 파악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가 직접 현장에서 찾아가는 법정을 진행함으로써 국민에게 한발 다가가는 사법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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