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광주 광산구의 한 야산 위에 지어진 암자에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스님들은 이 남자를 살갑게 맞아줬다. 밥 한 끼 하겠다던 김모(52)씨는 그렇게 도심 외곽 암자에서 2개월여를 지냈다.
스님들과 친해진 김씨는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김씨는 자신을 한옥 전문 건축업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싼값으로 암자를 손봐주겠다며 스님들을 꼬드겼다. 하지만 김씨가 요구한 금액을 바로 마련하기란 쉽지 않은 일. 솔깃한 제안이기는 했지만 스님들은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김씨의 진짜 직업은 목수로 사기혐의 등으로 체포영장만 3건이 발부된 지명수배자였다.
그는 지난해 10월 전남 무안에서 공사대금 5000만원을 가로챈 혐의, 2012년에는 서울에서 6600만원의 공사비를 빼돌린 혐의 등 모두 7건의 혐의를 받고 도피 중이었다.
그렇게 암자와 산아래 마을을 오가며 도피행각을 이어가던 김씨는 결국 자신을 받아준 스님들에게까지 사기를 치려다 덜미가 잡혔다.
김씨를 추적하던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 도심 외곽지역에 김씨가 머물고 있다는 것만 파악한 채 별다를 성과를 못 거두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중 스님에게 공사를 해주겠다고 말하고 다닌 김씨의 행적이 수소문하던 경찰에게 걸려든 것이다.
김씨는 결국 2일 오후 야산 위의 암자를 포위한 경찰에게 붙잡혔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공사비 등 1억 1000여만원을 빼돌리는가 하면 여성의 지갑을 훔쳐 약 270만원 상당의 신용카드를 사용한 혐의 등 7건의 범죄혐의로 김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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