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 서글픈 2차 피해
“직장 상사의 성희롱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7개월간 독방에서 근무해야 했어요. 창문을 통해 감시당하는 ‘유리감옥’이었죠. 여전히 저는 왕따예요. 상황이 이런데 누가 성추행을 신고할 수 있을까요.”지난해 11월 A씨가 근무한 서울 동작구 대방동 남도학숙의 독방 사무실. 회사에서 당한 성추행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한 뒤 A씨는 ‘유리감옥’과도 같은 독방에서 홀로 근무하는 식으로 2차 피해를 당했다.
그러나 상처뿐인 승리였다. 지난해 10월부터 광주시의 감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올 4월까지 그는 큰 창문으로 둘러싸인 독방에서 혼자 근무했다. 남도학숙 측은 인권위의 요구에 따라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시킨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A씨는 일상적인 업무 공유조차 받지 못한 채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인권위와 광주시에 성희롱 ‘2차 피해’를 호소했지만 “2차 피해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답변만 들었다.
지난해 공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30대 여성 B씨도 성희롱 2차 피해를 당했다. 회식 자리에서 남자 상사가 허벅지를 만졌고, B씨는 회사 인사팀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해당 상사는 어떤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사건은 업무 시간 외에 일어난 개인적인 일로 치부됐고, B씨는 계약 연장이 이뤄지지 않아 회사에서 나가야 했다.
여성가족부의 ‘2015년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사건으로 오히려 피해자만 직장을 그만둔 경우는 9.9%였다. 피해자만 자리를 이동한 경우(7%)를 포함하면 성희롱 사건으로 가해자는 징계없이 피해자만 2차 피해를 겪는 경우는 16.9%에 달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성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연루돼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주변인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사건을 해결하다 보면 성범죄 사건 자체도 피해자 중심에서 해결할 수 있고, 2차 피해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교수는 “성희롱 2차 피해의 일부는 성희롱 고충처리 담당자에 의해 일어나는 경향이 큰 만큼 고충처리 담당자가 일정 시간 이상의 전문교육을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성희롱 관련 법률에도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피해자의 불이익 금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시키고 예방 및 구제를 위한 세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2016-06-0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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