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령상 의무 규정은 없어…교육청 보고 범위 논란
전남 신안 섬마을 주민들의 여교사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중대 사안에 대한 교육청 보고 의무를 더 명확히 규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9일 교육계에 따르면 선태무 전남도교육청 부교육감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교육부에 사건 보고가 늦어진 경위를 설명하면서 “보고 사안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우선은 피해자 보호에 중점을 둬야 했고, 수업중에 발생한 사망 사고도 아닌 데다 일과 후 발생한 일이어서 교육부에 보고할 사안으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고 사안이 아니었다’ 혹은 ‘보고 의무가 없다’는 해명은 현행 법령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교원의 지위나 교육 활동과 관련해 발생한 중대 사건·사고에 대해 해당 시도 교육감이 교육부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한 법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교육계 요구로 지난해 말 개정돼 올해 8월부터 시행되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에는 ‘교원에 대한 폭행, 모욕 등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행위를 한 사실을 학교장이 알게 된 경우 즉시 관할청에 보고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그러나 이 역시 학교장의 보고 의무를 규정한 것일 뿐 교육감이 이를 다시 교육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은 아니다.
학교 현장의 자율성을 넓히는 차원에서 교원 인사, 복무 등에 대한 권한을 교육감에게 위임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정부 차원의 대처를 더디게 하거나 자칫 은폐 시도를 가능케 하는 것으로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 이번 성폭행 사건은 지난달 21일 발생했고 해당 학교는 이튿날인 22일 신안교육지원청과 전남교육청에 즉시 보고했지만 교육청은 2주 정도 지난 이달 3일에서야 교육부에 알렸다.
이날은 이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처음 알려진 날이기도 하다. 언론 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뒤늦게 교육부에 보고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언론 보도로 국민적 공분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전국 도서 벽지의 교사 근무 현황이나 관사 거주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 등 정부 차원의 후속 대책이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란 얘기다.
교육부 관계자는 “법적 의무는 없지만 중요 사안은 보고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그러나 보고 의무를 법에 명시하는 게 맞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어디까지를 보고 범위로 볼 것인지 등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학교에서 즉시 보고했음에도 교육청이 교육부에 알리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교육계 안팎의 논란이 예상되고 교육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사안이면 즉시 보고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교육청의 법적인 보고 의무 여부를 떠나 이번 사건을 애초 ‘보고 사안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전남교육청의 안이한 사태 인식은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특히 “사망 사고도 아닌 데다 일과 후 발생한 일”이라는 해명은 사안의 중대성과 교육청이라는 기관의 책임 및 역할을 고려할 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보고가 늦어진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며 문제점이 드러나면 전남교육청에 대한 감사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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