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열사 추모동판 최루탄 맞은 그 자리에 설치

이한열 열사 추모동판 최루탄 맞은 그 자리에 설치

입력 2016-06-09 16:46
수정 2016-06-0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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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29주기 맞아 연세대 교문 앞에서 제막식

이한열 열사 추모 29주기인 9일 그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바로 그 자리에 추모 동판이 설치됐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이날 오후 연세대 신촌캠퍼스 교문 왼쪽 기둥 앞에서 이 열사 추모 동판 제막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자 장례식 때 이 열사의 영정을 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연세대 이재용 교학부총장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마름모 형태로 바닥에 설치된 동판에는 국화 그림과 함께 ‘1987년 6월 9일 오후 5시 당시 연세대 2학년이었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곳, 유월 민주항쟁의 불꽃이 피어올랐다.’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동판이 놓인 자리는 29년 전 이 열사가 경찰에 쏜 최루탄에 맞고 쓰러진 곳이다.

1987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 간선제를 규정한 기존 헌법을 고수하겠다고 발표하고, 같은 해 1월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국적으로 민주화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이른바 ‘6월 항쟁’이다. 이 열사가 쓰러진 연세대 교문 앞은 민주화 투쟁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장소 중 하나다.

이 열사는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한 달 뒤 숨을 거뒀다.

그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요구는 더욱 거세졌고 결국 정권은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6·29 선언을 통해 무릎을 꿇었다.

우 원내대표는 제막식 인사말에서 이 열사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을 자격이 없는 죄인”이라며 “당시 총학생회장으로 말로만 투쟁했던 저 같은 사람 때문에 이 열사가 숨졌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작은 자유도 그 앞에 수많은 헌신, 희생, 고통 끝에 온 것을 국민이 알아야 한다”며 “교문에 새긴 것은 동판이 아닌 이한열 열사가 이루지 못한 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동판을 덮은 흰색 천이 걷히고 동판이 공개되자 참석자들은 주위에 국화를 놓으며 이 열사의 넋을 기렸다.

배 여사는 헌화가 이뤄지는 동안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추모 동판 제막식에 이어 이날 저녁에는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이한열문화제-유월을 노래하다’ 추모 문화제가 열린다.

문화제에서는 추모 29주기를 맞아 발표된 뮤지컬 ‘고귀한 슬픔’이 공연되고, 이 열사의 입학 동기인 연세대 86학번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합창단이 무대에 선다.

또 이날부터 9월 30일까지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이한열 유물전-유월이 이야기하다’가 진행된다. 유물전에는 영정사진 속 이 열사가 입은 조끼, 피격 당시 그의 피가 묻은 연세대 화학공학과 깃발 등이 전시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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