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친분’ 부장판사 사건 재배당 요구 안해…‘부적절’ 논란

‘정운호 친분’ 부장판사 사건 재배당 요구 안해…‘부적절’ 논란

입력 2016-08-17 15:28
수정 2016-08-1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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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레인지로버 중고차 ‘헐값 거래’, 2015년에 네이처리퍼블릭 사건 판결

정운호(51·구속기소)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고가 외제차를 사실상 공짜로 받은 의혹을 받는 현직 부장판사가 네이처리퍼블릭 관련 사건을 맡고도 소속 법원에 재배당 요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법원 내부에서조차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도권 지방법원 김모 부장판사는 작년 9월∼11월 네이처리퍼블릭이 피해자인 사건 3건의 판결을 내렸다.

관련 사건은 모두 가짜 네이처리퍼블릭 화장품을 만들어 유통한 상표법 위반 사범들에 관한 것이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당시 인기 제품이던 ‘수딩 앤 모이스처 알로에베라 92% 수딩젤’(이하 수딩젤) 위조 제품이 국내외에서 대량 유통돼 큰 피해를 봤다.

관련 사건이 모두 김 부장판사에게 배당된 것은 그가 속한 재판부가 해당 법원의 지적재산권 사건 전담 항소심 재판부여서다.

그러나 부장판사는 당시 정 전 대표와 가까운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회피나 재배당을 신청하는 것이 마땅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소송법은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해당 사건을 맡지 않는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이미 사건을 맡아 심리를 진행 중이어도 대법원 ‘법관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배당된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을 때’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넘겨달라고 배당권자에게 요청할 수 있다.

그런데 김 부장판사는 항소심 판결이 진행되던 때 이미 정 전 대표와 금전이 오가는 거래를 하는 등 특수한 관계를 맺은 상태였다.

그는 2014년 정 전 대표로부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레인지로버 중고차를 5천만원을 주고 샀다. 이는 당시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검찰은 정 전 대표가 차량 매각대금을 김 부장판사에게 일부 돌려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차를 공짜로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두 사람의 특수 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 부장판사는 이후 정 전 대표와 베트남 여행을 함께 다녀오는 등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검찰 수사팀은 정 전 대표 명의로 발행한 100만원권 수표 5∼6장이 김 부장판사 측 가족계좌로 유입된 단서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이 돈이 부의금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뿐 아니라 2013년에는 김 부장판사의 딸이 정 전 대표가 후원하는 미인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정 전 대표가 뒤에서 힘을 써준 것이 아니냐는 뒷말도 나왔다.

김 부장판사의 행동은 정 전 대표 사건과 관련해 기피 신청을 낸 임모 부장판사와 비교된다.

서울중앙지법에 근무 중이던 임 부장판사는 정 전 대표의 항소심 재판을 배당받은 작년 12월29일 정 대표와 친분이 두터운 법조 브로커 이민희씨와 강남의 고급 일식당에서 만나고 나서 스스로 사건 기피 신청을 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공정한 판결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면 스스로 회피했어야 했다”며 “본인이 어느 정도 친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해외여행까지 함께 다녀올 정도면 법 규정을 떠나 회피하는 게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역시 김 부장판사가 정 전 대표 사건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판결을 내린 배경에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정 전 대표가 네이처리퍼블릭 ‘짝퉁’ 제품 제조업자들이 법원에서 엄벌을 받도록 해 달라며 로비스트 역할을 한 강남 성형외과 의사 이모씨에게 1억원가량을 건넨 것으로 보고 관련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이다.

이와 관련해 이씨는 작년 10월께 김 부장판사에게 ‘짝퉁’ 사범을 엄벌에 처해달라는 부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만일 김 부장판사 측에 정 전 대표 측 자금이 흘러들어 간 것으로 최종적으로 확인되면 김 부장판사가 네이처리퍼블릭 사건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판결한 행위가 검찰의 수뢰 정황 입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관이 공정한 재판이 곤란하다고 판단하면 재배당을 신청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결론적으로 불공정한 재판 결과가 나타났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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