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편견이 더 쓰라린 화상”

“세상의 편견이 더 쓰라린 화상”

입력 2017-01-31 22:36
업데이트 2017-02-0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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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시선에 고통받는 환자들

“4년 전, 옆에서 작업하던 직장 동료가 실수로 내친 불붙은 알코올에 얼굴과 손이 탔습니다. 손을 못 쓰니 피임약을 먹었는데 생리를 했고 사춘기 아들이 생리대를 갈아줘야 했습니다. 비참했죠. 그래도 어떻게든 재활해 다시 일을 할 겁니다. 아들에게 카페 하나 차려주는 게 꿈입니다.”-A씨(43·안면과 손 등 화상범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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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에 화상을 입었던 이지선(39·여)씨가 오는 3월 한동대학교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로 강단에 서게 됐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화상 환자는 여전히 주변의 편견과 차가운 시선에 고통받고 있다. 화상 환자들은 치료 과정의 끔찍한 고통을 넘어 화상 치료 이후 일상에서 겪는 ‘왜곡된 시선’이 화상 못지않게 고통스럽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화상 환자의 트라우마 치료체계와 함께 이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사회의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31일 만난 오찬일(54·화상환자 모임 해바라기 대표)씨는 “무전기 대리점을 운영하던 2007년 누전으로 가게에 불이 나 발바닥 장애와 함께 전신 59%에 3도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31번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사고 이후에 한동안 온몸을 싸매고 땅만 보고 걸었습니다. 흉터는 있지만 옮기는 병도 아닌데 지하철에 타면 어르신들이 불쌍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피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화상 범위가 85%나 되는 박모(54)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화상을 입기 전에는 소위 부촌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직장을 잃고 수술과 치료를 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쓰다 보니 지금은 연탄불을 갈아야 하는 원룸에 침대 하나 놓고 삽니다. 화상 치료 때문에 전 재산을 다 잃은 겁니다.”

화상 환자는 건강보험 산정 특례를 적용받아 최대 1년 6개월간 무상으로 치료를 받지만, 특례 기간 이후에도 재건 치료 및 수술을 수십 차례 받아야 한다. 또 심리상담 치료는 별다른 지원이 따르지 않는다.

원미선씨의 백석대 박사 논문 ‘화상 환자의 외상 극복 경험 연구’엔 화상 환자의 아픔이 담겨 있다.

환자들은 통상 “상처에 고춧가루를 들이붓고, 용광로에 담겨 뼈와 삶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기분”이라고 치료 과정을 회상했지만 치료 후 겪게 되는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이 더 아프다고 했다.

논문에 나오는 세간의 시선은 크게 세 가지다. 쉽게 대해도 된다고 여기거나, 지나치게 불쌍하게 보거나, 이유 없이 꺼리는 식이다. 목욕탕 입장을 거절당하고, 장애인 하이패스를 만들고 싶은데 지문인식이 안 돼 포기한다. B(52·화상 범위 59%)씨는 “서너 살 되는 애들이 ‘아줌마 괴물 같다’ 말하고, 어디 가서 막일도 못하고 받아 줄 사람도 없다”며 “그릇도 깨 보고, 죽겠다고 스타킹도 목에다 둘러매 봤는데 더이상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따르면 지난해 화상 치료를 받은 사람은 55만 7085명이다. 이 가운데 신체 면적 20% 이상, 3도 화상을 입은 사람 중 신체 주요 관절부위가 오그라들었거나, 신체 일부를 잘라낸 사람, 안면장애를 입은 사람은 지체장애 등급을 받는다.

원 박사는 “미국이나 일본은 화상전문병원에 트라우마 센터 등을 설치해 정신적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며 “환자 치료 외에 화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화상환자 후원단체인 베스티안재단 설수진 사회복지사업본부 대표는 “특히 아동 화상의 경우 트라우마로 인해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렵고 심지어 교육을 포기한다”며 “신체적인 치료에서 나아가 멘토링과 심리 재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2017-02-01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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