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굴뚝·철탑으로 간 의사들 “노동자 진료는 봉사 아닌 연대”

거리·굴뚝·철탑으로 간 의사들 “노동자 진료는 봉사 아닌 연대”

이근아 기자
입력 2019-08-11 20:54
수정 2019-08-1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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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의료 검진하는 홍종원 의사·김이종 한의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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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홍종원(오른쪽) 의사와 하효열(오른쪽 두 번째) 심리상담가가 75m 고공 농성을 벌였던 파인텍 노동자들의 건강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해 굴뚝 위에 올라갔던 당시의 모습. 홍종원 의사 제공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홍종원(오른쪽) 의사와 하효열(오른쪽 두 번째) 심리상담가가 75m 고공 농성을 벌였던 파인텍 노동자들의 건강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해 굴뚝 위에 올라갔던 당시의 모습.
홍종원 의사 제공
“저희 진료는 봉사가 아닌 사회를 고치는 연대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의사 홍종원(32)씨는 병원이 아닌 거리나 굴뚝·철탑 위에서 진료 보는 일이 많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소속인 그는 벼랑 끝에 선 노동자들이 단식농성 등을 할 때 현장을 찾아 건강 상태를 살피는 활동을 수년째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역사거리의 25m 철탑에서 11일로 63일째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를 진료해왔다. 지난해에는 75m 굴뚝 위에서 426일간 농성한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노동자들의 건강을 챙겼다. 진료를 하려면 홍씨도 최소한의 진료 장비만 챙겨 까마득한 높이의 굴뚝과 철탑에 올라야 한다.

청년한의사회 소속인 김이종(45)씨는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지붕처럼 생긴 구조물) 위에서 농성하는 해고 수납원들의 건강을 수시로 살핀다. 김씨는 농성장 진료를 하는 이유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농성자들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지지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노동자들 지지”

해고 노동자들의 목숨 건 농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 단체도 구호 활동에 바빠지고 있다. 인의협과 청년한의사회가 대표적이다. 이 단체들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탄생했다. 홍씨와 김씨는 서울신문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의사로서 사회적 약자 곁을 지키는 것이 곧 한국 사회를 치료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농성장에서 종종 무력감과 마주한다고 했다. 홍씨는 “‘죽을 각오로 여기까지 왔으니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농성자들에게 ‘건강을 챙기시라’고 조언하는 게 겸연쩍고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고 했다. 김씨도 “2014년 세월호 유족의 단식 투쟁 때 농성자들의 위태로운 건강이 염려됐지만 그 절박함을 알기에 쉬이 말리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2014년 세월호 유족의 단식 투쟁 당시 ‘유민아빠’ 김영오씨(왼쪽)와 김이종 한의사
2014년 세월호 유족의 단식 투쟁 당시 ‘유민아빠’ 김영오씨(왼쪽)와 김이종 한의사
●“의사로서 사회적 약자 지키는 건 당연”

처음에는 의사들을 경계하던 농성자들도 진심 어린 진료 태도에 마음을 열기도 한다. 김씨는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진료할 때 나를 정부 기관이 보낸 사람인 줄 알고 처음에는 거리를 뒀다”면서 “하지만 차츰 가까워져 지금은 나를 ‘생명의 은인’으로 부를 정도”라고 말했다.

두 의사는 목숨을 걸고 하루하루 절박하게 버티는 노동자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김씨는 “노동자들이 몇 년간 목숨을 건 투쟁을 지속해야만 겨우 주목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도 품을 수 있는 건강한 한국 사회가 될 때까지 농성장 진료를 계속 할 예정이다. 홍씨는 “농성장 진료는 단순히 한 개인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사회가 건강해질 때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픈 분들을 치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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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2019-08-1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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