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지역 환자들, 타지역 병원 가면 코로나19 음성판정부터 요구받아

경기도에 사는 임신부 김모(36)씨는 최근 급히 수술을 받으려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진료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고향인 경북 포항에 최근 부모님을 만나러 다녀왔기 때문이다.

병원 측은 “대구·경북을 다녀온 지 2주가 넘었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아야 한다”며 진료를 완강히 거부했다고 한다. 다른 병원도 답은 비슷했다.

임신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수술이었던지라 김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10여만원을 내고 검사를 받았다. 중국 등 코로나19 발생국가 여행력이나 의심 증상이 없어 정부가 정한 무료 검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음성이 나오고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김씨는 15일 “대구·경북 출신을 감염자 취급하는 것도 억울한데, 꼭 필요한 진료를 받으려 해도 우선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검사받아야 하는 건 더 문제”라고 말했다.

대구·경북지역에 살거나 최근 이 지역에 다녀온 이들이 코로나19 전염 우려를 이유로 다른 지역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해 자기 돈을 내고 감염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무료 검사 대상은 코로나19 유행 국가·지역을 방문한 뒤 14일 이내에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이 나타났거나 의사 소견에 따라 입원이 필요한 원인 미상 폐렴이 발병한 경우 등이다.

최근 대구·경북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검사를 요구받는 이들은 확진자와 접촉하지 않았거나 의심 증상이 없으면 검사비 16만원가량을 자비로 내야 한다. 결과가 음성이면 환불도 받지 못한다.

대구에 사는 30대 여성 A씨는 전부터 앓던 기저질환이 재발한 것으로 의심돼 평소 다니던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병원은 A씨가 대구·경북지역 거주자라 감염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음압병실에서 13시간 넘게 기다리도록 했다.

A씨는 “음성 판정이 나온 뒤에도 감염 우려가 있다며 비용이 많이 드는 1인실에 입원시켰다”며 “대구·경북 출신 중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은 병원에 발을 들이기조차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입원하기로 예약까지 했던 한 환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경북 구미에 사는 김모(37)씨는 지난 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을 찾아 입원을 위한 예약 진료를 받으려다 병원 입구에서 제지당했다. 경북에서 왔으니 예정된 진료라도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온 뒤에 받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김씨도 자비를 내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이 나오고서야 병원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김씨는 “대구·경북에서 온 사람들에게 반드시 검사를 받게 하는 건 이해한다”면서도 “비용 부담을 줄여줄 방안은 필요하다”고 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 무료 검사 기준에는 의사가 각 환자의 상황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며 “일선 의사의 재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수정해 많은 국민이 검사 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일선 병원의 우려 등 현실적 문제 때문에 ‘셀프 음성 증명’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심경원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선별진료소 인력이 부족하고 검사 키트·시약 등 비용이 발생해 모두에게 무료로 검사를 제공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무증상 감염자도 있는 만큼 조금의 전염 가능성도 배제하고자 확산이 심각한 대구·경북지역 방문자들에게 검사 결과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