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마 할퀸 곡성·남원 현장 가보니
10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오일장에서 상인, 군인, 자원봉사자가 침수 피해로 진흙 범벅이 된 그릇을 꺼내 씻고 있다. 구례 뉴스1
마을 곳곳 뼈대 휘어진 시설 비닐하우스
황톳물에 잠긴 가재도구들 골목길 빼곡
축사 잠겨 소 1000마리 중 절반 폐사·유실
“징한 놈의 비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요. 이런 대홍수는 평생 겪지도 보지도 못했지라우.”
10일 낮 12시쯤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리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문희생(89)씨는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섬진강이 범람해 장독들이 마당을 떠 다녔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지만, 이번처럼 마을 전체가 물바다로 변한 것은 평생 처음”이라면서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들녘을 망연히 바라봤다.
이날 오전부터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고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폭격 맞은 듯이 뼈대가 휘어진 비닐하우스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일대는 멜론 주산지로 벼농사보다는 시설하우스가 주를 이룬다. 남북으로 뻗친 마을 골목길에는 이번 폭우에 잠겨 황톳물을 머금은 갖가지 가재도구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회관 앞에 모인 20여명의 주민들은 “섬진강 수계를 관리하는 책임자는 죽일 X들”이라며 “이번 홍수 피해는 상류인 섬진강댐에서 물을 대량으로 방류하면서 더욱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신리 마을은 섬진강 본류와 맞닿아 있지만 제방이 무너지거나 범람해서 물에 잠긴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는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배수지를 통해 물이 섬진강으로 흘러 나간다.
긴 장마에 따른 침수 피해가 잇따르는 가운데 10일 오후 대전 서구의 한 폐차장에 정림동 아파트 주차장 침수 차량들이 이송되고 있다. 대전 뉴스1
신리와 이웃한 곡성농협 임동훈(46) 농산물산지유통센터장은 “이번 폭우로 멜론 선별기와 사무실 등이 물에 잠기면서 2억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났다”며 “물에 젖은 포장박스 등을 치워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곡성군은 지난 7~8일 옥과면 555㎜를 최고로 평균 429㎜의 폭우가 쏟아져 6명이 숨지고 주택 329채, 시설하우스 700동, 벼·밭작물 420㏊, 한우 153마리, 오리 8만 9000마리, 내수면 양식장 장어 413만 마리가 유실 또는 침수되는 피해가 났다.
“음매 음매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축사 절반 이상 물이 차올라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어….”
10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축사 지붕에 올라갔던 소를 크레인을 이용해 구조하고 있다. 소는 구조 전에 진정제가 담긴 화살을 쏴 진정시켰다. 집중호우와 하천 범람으로 물이 차오르면서 떠올라 지붕으로 피신했던 소들은 물이 빠지자 고립됐다. 일부 소들은 건물 지붕이 붕괴되며 떨어지기도 했다. 구례 뉴스1
곡성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남원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2020-08-11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