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때문에 선거하는데… 제대로 사과받아 용서하고 싶어”

“성추행 때문에 선거하는데… 제대로 사과받아 용서하고 싶어”

손지민 기자
입력 2021-03-18 00:02
수정 2021-03-18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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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석상 처음 나선 박원순 피해자

입장문서 ‘위력에 의한 성추행’ 재강조
“피해 회복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
‘피해호소인’ 명칭·당헌 개정 모두 잘못
박前시장 지지자 2차 가해 가장 힘들어”
신상유출 우려해 사진·영상 촬영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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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 우려에 사진 촬영서 빠진 피해자
2차 가해 우려에 사진 촬영서 빠진 피해자 17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기자회견에서 서혜진(왼쪽 세 번째)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신변 보호와 2차 피해 방지 차원에서 피해자는 촬영 대상에서 제외됐다.
사진공동취재단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3주 앞두고 처음으로 직접 심경을 밝혔다. 그동안 변호인단이나 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입장을 밝혀 왔던 것과 달리 스스로 언론 앞에 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자 격인 더불어민주당이 피해 사실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나 인정 없이 후보자를 내는 모습에 크게 반발한 의도로 풀이된다.

피해자 A씨는 17일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는 사람들’이 서울 중구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민주당에 피해 사실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신상 유출에 대한 두려움을 감수하고 언론 앞에 나선 이유에 대해 “본래 선거가 치러지게 된 이유가 많이 묻혔다”고 밝혔다. 이번 보궐선거가 성추행 사건에서 촉발됐음에도 민주당에서 제대로 된 대처 없이 유야무야 선거를 치르려는 모습을 비판한 셈이다.

A씨는 ‘그분의 위력은’으로 시작하는 일곱 문장의 입장문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박 전 시장의 위력이 박 전 시장을 향해 잘못이라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그 위력이 (지지자들의) 이념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고, 나를 괴롭히는 일에 동조하도록 했다”면서 박 전 시장의 위력은 여전히 강하게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성추행 사건의 출발이 ‘위력’이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A씨는 “용서하고 싶다”고 운을 뗐다. 그는 “피해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라면서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지은 죄’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게 먼저라는 뜻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연이어 “사과한다”고 말했지만 A씨의 피해 사실을 직접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는 모습을 겨냥한 것이다.

A씨는 “이 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한 명의 존엄한 생명을 잃었고, 제가 용서할 수 있는 ‘사실의 인정’ 절차를 잃었다”면서 “‘사실의 인정’과 멀어지도록 만들었던 피해호소인 명칭과 사건 왜곡, 당헌 개정, 극심한 2차 가해를 묵인하는 상황들은 처음부터 모두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불쌍하고 가여운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다.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존엄한 인간이다. 사실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 진정성 있는 반성과 용서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회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A씨는 그동안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으로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의 2차 가해와 신상 유출을 꼽았다. 그런 A씨의 심경을 반영해 기자회견은 A씨의 신분을 철저히 보호하는 선에서 진행됐다. 현장 사진과 영상 촬영은 하지 않고, 기자회견 유튜브 생중계 영상에서도 A씨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소리가 송출되지 않고 자막으로만 처리됐다.

기자회견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과 공동변호인단인 서혜진 변호사, 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 모임 공동대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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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2021-03-1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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