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많이 늙었지?”…58년 전 헤어진 동생, DNA로 찾았다

“언니 많이 늙었지?”…58년 전 헤어진 동생, DNA로 찾았다

김정화 기자
입력 2023-01-31 17:30
수정 2023-01-3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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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경찰서, 장기 실종 사남매 상봉식
1965년 전차서 손 놓쳐 생이별 뒤 극적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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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눈물
끊이지 않는 눈물 31일 오후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58년 전 두 동생과 헤어진 장희재 씨(오른쪽)와 이날 언니를 다시 만난 동생 장희란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장희재 씨는 1965년 3월께 서울 태릉 부근에서 여동생 2명과 헤어졌고, 동작경찰서와 아동권리보장원의 도움을 받아 이날 여동생들과 다시 만났다. 2023.1.31 연합뉴스
“언니 알아보겠어? 언니도 많이 늙었지….” “죽지 않고 이렇게 만나니까 얼마나 좋아.”

장희재(69)씨가 동생 희란(65)씨의 손을 부여잡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서울 노량진에서 전차를 타고 가다 엄마 손을 실수로 놓치고 헤어진 뒤 58년이 흘러서야 겨우 만난 이들은 하염없이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다독거리며 그간의 그리움을 맘껏 표출했다.

31일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장기 실종 사남매 상봉식 현장은 내내 울음바다였다. 첫째 희재, 둘째 택훈(67), 셋째 희란, 넷째 경인(63)씨가 마지막으로 함께한 건 1965년 3월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나간 희란·경인씨가 길을 잃어 영영 돌아오지 못하면서 생판 남으로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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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만의 가족상봉
58년만의 가족상봉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장기실종자 가족 상봉식에 참석한 오빠 장택훈(왼쪽 두번째부터), 실종 여동생인 장경인, 장희란 씨, 언니 장희재 씨가 58년만에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3.01.31. 뉴시스
희재씨는 “잃어버린 동생들을 계속 찾으려 했다. 1983년 KBS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과 2005년 아침마당 등 방송에도 나갔지만 동생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유전자(DNA)로 쉽게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하면서 오랜 이별도 종지부를 찍게 됐다.

희재씨가 2021년 경기 안양 만양경찰서에 실종가족 신고를 했고, 사건이 동작서로 이첩된 뒤 본격 수사가 이뤄졌다.

경찰은 보육원, 노숙인 쉼터 등 관련 기관의 협조를 받아 실종자 조회를 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일단 DNA 대조 작업을 하기로 하고 희재씨 DNA를 채취해 아동권리보장원에 보냈다. 비슷한 시기 경인씨도 인천 연수경찰서에 신고하면서 DNA 정보가 등록됐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지난해 12월 DNA가 유사한 사람을 찾았다고 경찰에 연락했고 2차 대조 작업을 통해 가족 여부를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희란과 경인씨는 그동안 보호시설에서 지어준 혜정·정인이라는 이름 대신 본명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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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실종 가족을 찾던 장희재씨가 서울 동작경찰서에 실종신고 접수할 때 제출한 동생 장희란씨의 5살 무렵 사진. 본인 제공
장기 실종 가족을 찾던 장희재씨가 서울 동작경찰서에 실종신고 접수할 때 제출한 동생 장희란씨의 5살 무렵 사진. 본인 제공
오랜만에 만난 이들에게선 그간 함께하지 못한 시절에 대한 서러움과 더 빨리 찾지 못한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경인씨는 “당시 노량진 전차 대합실에서 발견된 뒤 아동보호소로 옮겨졌는데, 이후 고등학교 공부도 독학으로 하면서 정말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며 “그래도 살아 있으니 이렇게 좋은 일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희란씨도 “살면서 ‘엄마’ 소리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이었다”며 “언니를 찾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다리 힘이 쭉 빠지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언니, 오빠가 있어서 이제는 든든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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