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가을 별미 추어탕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가을 별미 추어탕

입력 2011-11-21 00:00
업데이트 2011-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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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별미 중 하나가 추어탕입니다. 끓여내는 방법은 남북과 동서가 제각각이지만 미꾸라지를 원료로 한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요새야 추어탕집에서 쓰는 미꾸라지 대부분이 양식이지만 옛맛을 살리려면 진흙논에서 벼꽃을 받아먹고 자란 놈이 으뜸입니다. 한로(寒露), 상강(霜降) 지나도록 살을 채워 뱃바닥이 노르스름한 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지요. 여름이면 농수로나 도랑에서 잠깐 반두질을 해도 몇 사람 먹을 미꾸라지 어렵지 않게 잡았지만 요새는 그마저 추억입니다. 농약을 쏟아붓듯 뿌려대니 생명붙이가 살아남을 재주가 없는 것이지요. 그때는 벼베기 끝난 논에서 차진 흙 삽질하며 미꾸라지 잡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진득한 흙을 파뒤집으면 실한 미꾸라지가 꾸무럭꾸무럭 기어나오곤 했지요.

그 미꾸라지가 농가의 가을철 보신식이었습니다. 왕소금 척척 뿌려 미끈덕거리는 곱을 씻어내 가마솥에 넣고 푹곤 뒤 뼈째 갈아 냅니다. 여기에 고사리, 고구마순에 시래기와 갖은 양념을 듬뿍 넣고 끓여내면 담박하고도 감칠맛 나는 추어탕이 됩니다. 먹을 때 방앗잎이나 산초가루 좀 곁들이면 “이 맛 볼려고 가을 기다렸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경기도 등지에서는 통미꾸라지로 탕을 끓여내는데, 이것도 나름 풍미가 있더군요. 봄부터 몸뚱이 놀려 논밭 일궈야 했던 장정들, 가을걷이 후 추어탕 먹는 재미로 1년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 추어탕이 간단치 않습니다. 단백질과 비타민A가 많아 고기 귀했던 그 시절에 회를 동하게 하는 영양식이었던 것인데, 요새도 이 정도면 으뜸가는 웰빙음식이겠지요.

이게 탕은 탕인데, 누군 ‘추어탕(秋魚蕩)’이라고 하고 또 누군 ‘추어탕(鰍魚蕩)’이라고도 합니다. 미꾸라지를 ‘鰍魚’라 했으니 鰍魚蕩이 맞는 것 같지만 미꾸라지 제맛 보려면 가을이라야 되니 秋魚蕩도 크게 틀린 말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문제는 미꾸라지가 사라져 간다는 것인데, 그래도 맛난 추어탕 먹으려면 중국산이나 양식보다야 토종이 제격 아니겠습니까. 이미 씨가 말라버린 토종 타령이 좀 그렇지만 잘하면 그런 땅 만들기 어렵지 않을 듯도 한데 다들 남의 일이라고만 여기니….

jeshim@seoul.co.kr

2011-11-2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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