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헬기 사격’ 첫 공식화 순간에도… 전두환 ‘꾸벅꾸벅’

사법부 ‘헬기 사격’ 첫 공식화 순간에도… 전두환 ‘꾸벅꾸벅’

최치봉 기자
입력 2020-12-01 01:46
수정 2020-12-0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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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선고 안팎

전씨, 2017년 회고록서 조비오 신부 비난
2년 6개월간 ‘헬기 사격’관련 모르쇠 일관
형량 선고 직전 고개 들었다 다시 잠들어
11시간 만에 귀가… 시민들 질문엔 무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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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린 지난달 30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법 앞에서 전 전 대통령이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울신문DB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린 지난달 30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법 앞에서 전 전 대통령이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울신문DB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진압 때 헬기 사격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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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광주지법에서 1심 선고를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떠나는 곳에 접근하려던 5월 단체 회원이 경찰에 가로막히자 울부짖고 있다. 전씨는 이날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광주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30일 광주지법에서 1심 선고를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떠나는 곳에 접근하려던 5월 단체 회원이 경찰에 가로막히자 울부짖고 있다. 전씨는 이날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광주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법원은 ‘전씨가 헬기 사격을 알았다’고 결론짓고, 고 조비오 신부의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씨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등 국가기관이 헬기 사격 사실을 확인했으나, 사법부가 구체적 증거를 들어 이를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전씨는 2017년 자신의 회고록에서 조 신부의 헬기 사격 증언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으나, 정작 자신이 거짓말을 한 셈이다. 조 신부를 비난한 회고록은 2017년 초 국과수가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 탄흔 조사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결과를 발표한 지 3개월 후인 같은 해 4월 출간됐다. 국과수는 당시 건물 10층 바닥, 기둥 입사각 등을 분석해 헬기에서 M16 소총 또는 M60 기관총이 발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이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씨 측은 지난 2년 6개월간 18차례의 사건심리와 변론을 통해 ‘헬기 사격은 모른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더 나아가 “비이성적인 사회가 만들어 낸 허구”라며 극구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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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전씨에 대한 유죄 판결은 예견된 수순으로 보인다. 국과수의 헬기 탄흔 분석에 이어 국방부 특조위도 2018년 2월 조 신부와 시민, 미국인 목사 아놀드 피터슨 등 8명으로부터 5·18 당시 헬기 사격 목격진술서를 담은 보고서를 펴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은 주로 집단발포가 이뤄진 5월 21일 오후 1시 30분~오후 5시, 전남도청 진압작전이 이뤄진 27일 새벽 시간대에 집중됐다. 당시 특조위 관계자는 “1항공여단 상황일지와 전교사 작전일지, 31사단 전투상보, 기무사 문건 등 각종 자료에도 헬기 출동과 실탄 배분 등 관련 내용이 들어 있다”면서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실질적으로 군을 장악한 전씨가 이 같은 계엄사 작전 지침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씨는 법정에서 선고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조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보였다. 법정 경위들이 돌발 상황에 대비해 신체 수색을 철저히 하고 곳곳에 검은색 장우산을 배치하는 등 긴장한 모습을 보인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전씨는 형량을 선고하기 직전 잠시 고개를 들었지만, 선고 당시에는 눈을 감고 또 졸았다. 전씨는 지난해 3월에는 처음으로 재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에 “왜 이래”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고, 이날도 자택에서 출발하며 시위대에 “말조심해 이놈아”라고 고함친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법원 앞에 모인 분노한 시민들을 피하기 위해 법정 출석 당시 타고 온 에쿠스 차량 대신 카니발 차량으로 바꿔 타고 법원을 떠났다. 시민들은 전씨가 에쿠스 차량을 타고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고 계란과 밀가루를 투척하는 소동도 일었다.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오후 7시 20분쯤 연희동 자택에 도착한 전씨는 귀가할 때는 모자를 벗은 모습이었다. 자택 앞에서 대기하던 취재진이 `헬기 사격 인정하느냐’, `시민들에게 할 말 없느냐’고 물었으나 전씨는 아무 말 없이 자택으로 향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2020-12-0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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