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소아(bonsoir) 마담(4)=「나폴레옹」오미정 마담

봉소아(bonsoir) 마담(4)=「나폴레옹」오미정 마담

입력 2011-11-03 00:00
업데이트 2011-11-0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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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비록 그 꿈이 이루어지기에는 어려운 현실 속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역시 꿈이기에 신비스러운 애착과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는가 보다. 지금은 한낱 스카치 코너의 마담. 그러나 그녀에게도 꿈이 있었고 지금도 그 꿈은 포근한 기대와 흥분을 그녀의 가슴에 안겨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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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카치 코너「나폴레옹」(서울 중구 소공동)의 주인 마담 오미정(吳美貞·28)씨의 꿈은 성실하고 인정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

 꿈 치고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실속있는 꿈이다.

 결혼을 할 수 없는 어떤 이유도, 조건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고향은 부산(釜山)이라고 했다.

 여자상업고등학교를 나왔다던가 웬만큼 교양도 지성도 갖추었다.

 처녀시절(지금도 처녀지만)에 저지른 무슨 잘못이나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외모는?

 160cm가 될까 말까 한 키에 50kg이 채 못돼 보이는 알맞은 몸매.

 스물여덟살이라고는 하지만 미혼인 때문인지 몸 전체에 흐르는 탄력은 생고무만큼이나 탄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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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윤곽은 흔히 말하는 동양미인의 그것과 같은 달걀형.

 시원스러운 이마의 곡선, 화장붓 끝이 한번도 닿지 않은 듯한 자연미 그대로의 눈썹, 도툼한 코와 입술,모두가 미인이라고 판정할 수 있는 합격선을 상회한다.

 다만 눈매가 약간 매섭게 보이기는 하지만···.

 쌍꺼풀 없이 얄팍한 눈매가 예쁘면서도 만만치 않은 성깔을 말해 주는 듯하다.

 『눈매가 그래서 팔자가 센가 봐요』

 그녀는 스카치 코너 마담으로 일하게 된 원인이 그 눈매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 1년 동안 어느 대학생과 교제를 해 본 경험은 있어요』

 그것이 이성교제의 전부라는 듯한 말투다.

 『물론 믿지 않으실 거고, 믿어 달라고 사정도 안합니다만, 제 성격과 생활 환경이 그 이상의 경험을 허락해 주지 않았어요』

 한때는 언론계에서 꽤 이름 있는 어버지가 뇌일혈로 세상을 떠나자 다섯식구 한 가정의 생활을 몽땅 책임맡게 됐다는 것.

 그때 오(吳)마담의 나이 21살, 부산(釜山) 모 대학생과 한창 열을 올리고 교제하던 중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머니와 3명의 남동생을 거느리게 된 오(吳) 마담은 즉각 교제를 끊어버리고 부산(釜山) 보수(寶水)동에 음식점을 차렸다.

 주인 겸 종업원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일해 봤으나 경험 부족 때문인지, 장사는 뒷걸음질만 쳤고 결국 1년여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그동안에도 혼담은 여러 번 있었지만 제 자신이 전혀 마음이 내키지 않아 모두 거절해 버리고 말았어요』

 집을 팔고 재산을 정리해서 서울로 올라온 오(吳)마담은 서울 종로구 수송(壽松)동에 조그만 한옥 한채를 전세로 얻어 가족을 정착시켰다.

 취직을 해 보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사를 해 보려 했지만 지난 경험에 비추어 두려움이 앞섰다.

 궁리 끝에 손을 댄 것이 스카치 코너「나폴레옹」.

 문을 연 것은 72년 10월.

 10평 남짓한 홀에는 손님이 끊일 새 없지만 오(吳)마담의 얼굴에는 별로 기쁜 빛이 나타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희생된 젊음의 아쉬움 때문인가,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꿈의 실현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인가.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저는 남성에 대한 환멸을 크게 느꼈어요』

 이름이「나폴레옹」이지「나폴레옹」을 상징할만한 사진 한장, 장식품 하나도 없는 좁은 홀을 지키고 앉은 오(吳)마담의 남성관이 펼쳐진다.

 『그래도 손님들은 대개 대학 교수나 공무원, 언론인 등 수준이 높다면 높은 손님들이에요.그런 손님들이 간혹 참기 어려운 말과 행동을 할 때는 머리가 어지러워져요』

 웃음기 없는 얼굴에 엷은 냉소가 흐른다.

 『남자가 술을 마시면 으례(으레) 그렇다지만 숫제 술 한잔 안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아저씨들도 있어요. 남자란 그런 건가요?』

 『남자란 그런 건가요?』무척 낯익은 표현이다.『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시대에 비롯된 표현이던가, 아니면 여류 풍류객 황진이(黃眞伊) 시대부터 던가, 아마도 남자 있고 여자 있던 시대부터 비롯됐다고 해 두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결혼은 물론 해야지요.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온 꿈인 걸요』

 결혼을 어린 시절부터 꿈으로 간직할 만큼 동경했다는 조숙한 여자도 아마 드물 것같다.

 『때가 되면 하게 되겠지요. 인연이 닿으면 좋은 남자도 만나게 되겠지요』

 그녀는 다 그렇고 그런 남자들 속에서도 때를 기다리고, 인연이라는 것에 기대를 건다고 했다.

 『고독이요? 꼭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야만 되겠어요?』

 때가 오고, 인연이 닿을 때까지의 고독을 그녀는 웃음으로 시인했다.

 여자 나이 스물여덟, 고독을 느끼기로 말한다면 그 정도를 어떻게 다 말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볼링, 수영, 테니스··· 그런 것이 고독을 달래주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운전면허증까지 받았어요. 남들이 한다는 것은 다 조금씩 해 봤어요』

 북한산 테니스클럽 회원에 또 무슨 볼링클럽 회원에 정말 가뜩이나 쪼들리는 시간을 용캐도 짜내어 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오(吳)마담의 말처럼, 그 매서운 눈매 때문인가. 그녀의 얼굴에는 싸늘한 고독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을뿐이다.

 스카치 코너「나폴레옹」에는 오늘도 많은 손님이 찾아들고 있건만···.<재(宰)>

[선데이서울 73년 8월12일 제6권 32호 통권 제252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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