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할머니한테 특별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내게도 없다. 내가 무슨 일로 넘어져도 “밥 먹자”였다. 아파서 누워도, 시험에 떨어져도, 울면서 들어가도 그저 “밥 먹자”. 짧고 헐겁게 오래된 말. 삶의 마디마다 차려졌을 밥상에 나는 “잘 먹을게요” 한 번도 답했던 적이 없고.
말로 하지 않아도 오래 깊이 스미는 온도는 몇 도일까.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가을볕에 따끔따끔 데워진 장독 뚜껑이 해 질 녘 천천히 누그러지던 온도. 해가 지고 별이 떠도 식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길고 고요했던 그 온도.
옛집에 가서 대문을 활짝 열고 그때처럼 큰 소리로 인사해야지. 그제도 어제도 왔던 것처럼 “다녀왔습니다”라고. 아무도 열지 않아 혼자 졸고 있을 장독 뚜껑에 가만히 손을 올려 봐야지. 그때처럼 해가 지고 별이 뜨도록.
2023-09-2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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