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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만에 펼쳐진 직지의 구절 ‘이치와 현상은 둘이 아니다’

반세기 만에 펼쳐진 직지의 구절 ‘이치와 현상은 둘이 아니다’

임병선 기자
입력 2023-04-12 09:00
업데이트 2023-04-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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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와 현상은 둘이 아니다

  마음자리는 자재롭고 고요하며

  법성에는 본래 열 가지 번뇌가 없다.

  모든 것이 부처님 일 아닌 것이 없는데

  어찌 생각을 거두어 좌선을 하는가.

  망상은 본래부터 공적하니

  반연을 끊어 없앨 필요가 없다.

  지혜로운 이는 얻을 만한 마음이 없으니

  저절로 다툼도 없고 시끄러움도 없어질 것이다.

  무위의 크나큰 도를 알지 못하면서

  언제 현묘한 이치를 증득하리.

  부처와 중생은 한 종류이고 중생이 바로 세존인데

  범부는 헛되이 분별을 내어

  무 속에서 유에 집착해 미혹에 분주하구나.

  탐욕과 성냄이 비고 고요한 줄 알며 그 어느 것이 진문 아니리.

  고요함과 산란함은 둘이 아니다

  성문은 소란을 피하고 고요함을 구하니

  밀가루를 버리고 떡을 구하는 것과 같네.

  떡은 본래 밀가루에서 생겨났는데

  만드는 사람 따라 다양하게 변하네.

  번뇌가 곧 보리이고

  마음이 없으면 경계 또한 없는 것이요,

  생사가 열반과 다르지 않고

  탐욕과 성냄은 아지랑이나 그림자와도 같네.

  지혜로운 이는 부처를 구하려는 마음 없지만

  어리석은 이들은 밖으로 치닫고 있네.

  일생을 헛되이 보내고 있으니

  여래의 묘한 정수리 보지 못하리라.

  음욕과 성냄의 성품이 공한 줄 안다면

  확탕지옥과 노탄지옥이 저절로 식으리라.

  선과 악은 둘이 아니다

  나의 몸과 마음 쾌락하니

  고요하여 선도 없고 악도 없네.

  법신은 자재하여 방위도 없으니

  눈에 보이는 것마다 정각 아닌 것 없네.

  육진은 본래부터 공하고 고요한데

  범부가 허망하게 집착을 내는 것이네.

  열반과 생사는 평등할 뿐이니

  사해의 그 무엇이 후하고 박할 것인가.

  무위의 큰 도는 자연스러운 것이니

  마음으로 헤아릴 필요가 없는 것이네.

  보살은 얽매임이 없어 영통하나니

  하는 일 항상 미묘한 깨달음을 머금고 있네.

  성문들은 법에 집착하여 좌선을 하니

  누에가 실을 토해 스스로 가두는 것과 같네.

  법성은 본래부터 둥글고도 밝으니

  병이 나았는데 왜 약에 집착하는가.

  모든 법이 평등한 줄 안다면

  고요하고 맑고 상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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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국립도서관(BnF)이 12일(현지시간)부터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에서 전시하는 직지 하권의 실물 옆에 일부 구절을 확대한 인쇄물을 걸어놓았다. 파리 연합뉴스
프랑스국립도서관(BnF)이 12일(현지시간)부터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에서 전시하는 직지 하권의 실물 옆에 일부 구절을 확대한 인쇄물을 걸어놓았다.
파리 연합뉴스
프랑스국립도서관(BnF)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을 50년 만에 일반 대중에게 공개한다. 12일(현지시간)부터 7월 16일까지 이어지는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를 통해서다.

그런데 도서관 측은 초기 인쇄술 발달 과정을 설명하는 전시회장 앞쪽 유리 상자 안에 직지의 한 부분을 펼쳐 놓은 채 관람객을 맞는다. 이 두 쪽에는 불교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인 ‘비이원성’이 기술돼 있다.

BnF에서 동양 고문서 부서를 총괄하는 로랑 에리셰 책임관은 전날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직지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책의 뒷부분을 전시했다며 그 장에 담긴 내용도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파리의 길상사 주지인 혜원 스님은 연합뉴스에 비이원성이란 선과 악, 너와 나, 아름답고 추함 등 분별과 차별을 뛰어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위에 이탤리체로 표현된 부분은 혜원 스님이 제공한 해당 구절의 번역본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이 2005년 초판을 인쇄한 직지 한글본으로, 번역은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이 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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