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까지 혼미해선 안 된다”던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 서예가로서 재조명

“글씨까지 혼미해선 안 된다”던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 서예가로서 재조명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입력 2024-07-28 15:06
수정 2024-07-2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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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백운서경’전 9월 19일까지
“독립문의 한자·한글 편액 동농의 것” 가능성 제기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농 김가진 서예전 ‘백운서경’에서 백운동천 암각 글씨 탁본을 소개하고 있다. 뉴스1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농 김가진 서예전 ‘백운서경’에서 백운동천 암각 글씨 탁본을 소개하고 있다.
뉴스1
“독립운동가·애국계몽가로서의 명성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서예가 김가진의 면모를 재조명하는 자리입니다.”

동농 김가진(1846~1922) 서예전 추진위원장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청장은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오는 9월 19일까지 열리는 ‘백운서경’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농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최고 어른인 ‘국노’(國老)로 모셨던 인물이자 조선의 대신 중에 유일하게 임시정부에 합류했던 인물이다.

이번 전시에는 동농의 시와 서, 그가 전국에 남긴 현판의 탁본, 인장과 위창 오세창, 백범 김구 등 그와 교류한 독립운동가들의 글씨 등 200여점이 나왔다.

전시명인 ‘백운서경’은 그의 서예 경지를 의미한다. 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백운동 골짜기에 백운장이라는 집을 짓고 자신을 ‘백운동 주인’이라고 한 일을 기렸다. 지금도 백운동 골짜기 암벽에는 그가 쓴 거대한 백운동천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으며 한 글자당 크기가 가로 1.2m, 세로 1m 정도에 달한다. 전시에서는 탁본 형태로 만날 수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농 김가진 서예전 ‘백운서경’에서 백운동천 암각 글씨 탁본을 비롯한 동농 선생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농 김가진 서예전 ‘백운서경’에서 백운동천 암각 글씨 탁본을 비롯한 동농 선생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동농의 글씨는 입고출신(入古出新·고전에 깊이 들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의 자세를 견지했다. 근대기 유행과 시시각각 변하는 취향을 따라가기보다는 오랜 기간 고법의 정수를 체득하는 데 천착했다. 50대 후반에야 비로소 새롭게 해석한 자신만의 행서·초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유 전 청장은 “세상이 혼미한데 어떻게 멋들어진 글씨를 쓸 수 있었겠느냐”며 “동농은 ‘글씨까지 혼미해선 안 된다’며 정통에서 흔들림 없는 글씨를 쓰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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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농 김가진의 생전 모습. 동농문화재단 제공
동농 김가진의 생전 모습.
동농문화재단 제공
전시는 동농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7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특히 그가 가족, 지인을 위해 남긴 글씨, 편지 등이 전시된 2섹션 지단정장(종이는 짧고 정은 길어)에서는 따뜻한 면모도 엿볼 수 있다. 해당 섹션에서는 아들 김의한의 한글 교육을 위해 직접 쓴 한글 교재와 첫돌을 기념해 쓴 천자문 등을 만날 수 있다.

독립문의 한자·한글 편액이 동농의 것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독립문 글씨를 쓴 사람이 이완용이라는 설도 있지만 유 전 청장은 필법 등으로 볼 때 동농이 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예전 추진위원인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동농과 이완용의 대자 편액 글씨 조형 비교연구, 추가 물증 발굴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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