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작가 “신작 소설 ‘해리’는 진보와 민주의 탈을 쓴 위선자들에 대한 이야기”

공지영 작가 “신작 소설 ‘해리’는 진보와 민주의 탈을 쓴 위선자들에 대한 이야기”

조희선 기자
조희선 기자
입력 2018-07-30 14:47
수정 2018-07-3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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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김부선 스캔들 개입 관련 “맞고 있는 여자 구하려 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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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해리’ 발표한 소설가 공지영.
5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해리’ 발표한 소설가 공지영. 출판사 해냄 제공
“평소 ‘작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작가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벌거벗었네’라고 말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이라고요.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제가 그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워낙 생각도 없고 앞뒤도 못가리고 어리석어서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아무 자리에서나 ‘벌거벗었다’라고 말했던 탓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공지영 작가는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작 장편소설 ‘해리 1·2’(해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배우 김부선씨 스캔들과 관련해 김씨를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 작가는 그간 부당한 상황을 보면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던 자신의 과거 일화들을 들려주면서 “한 사람이 울고 있는데, 부당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새 작품을 내기 얼마 전이니까 나에 대한 독자들의 이미지가 어떨지 신경쓸 수는 없었다”면서 “한 여자를 오욕에서 구하기 위해 듣고 본 바를 얘기했을 때 나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는 세상에서 독자들에게 무슨 얘기를 하겠나. 지나가다 맞고 있는 여자를 봤지만 (신작 출간을 고려해) ‘나중에 구하자’고 하는 상황에서 책이 잘 팔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행동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 작가는 자신의 등단 30년 기념작이자 5년 만에 발표한 장편 소설 ‘해리’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어떤 악녀에 관한 보고서”라고 소개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후퇴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내가 목격한 악(惡)은 1980년대나 그 이전의 어떤 단순함과는 굉장히 달라졌다. 재벌과 가진 자들의 횡포가 극심해지는 사회에서는 간단한 말로도 진보와 민주주의의 탈을 쓸 수 있고, 그것이 예전과는 달리 돈이 된다는 것을 체득한 사기꾼들이 몰려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우리가 지금부터 향후 몇십년 간 싸워야 할 악은 아마도 진보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엄청난 위선을 행하는 그런 무리가 될 것이라는 작가로서의 감지를 이 소설로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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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공지영의 등단 30주년 기념작이자 5년 만에 발표한 신작 소설 ‘해리’
소설가 공지영의 등단 30주년 기념작이자 5년 만에 발표한 신작 소설 ‘해리’ 출판사 해냄 제공


‘해리’는 ‘도가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그간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소설로 형상화해온 작가가 우리 사회의 또다른 이면을 들춰낸 작품이다. 공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악으로 묘사한 사람들은 우리가 쉽게 선과 정의라고 믿었던 가톨릭과 사제들, 장애인 봉사자, 기자, 그리고 수많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라면서 “위선을 행함으로써 돈을 긁어모으는 등장 인물들을 통해 이것이 막말을 내뱉는 극우 정치인보다 우리들을 더 혼란스럽게 하고 새로 경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소설을 쓰게 됐다”고 집필 배경을 밝혔다.

‘해리’는 안개의 도시 ‘무진’에서 권력자와 성직자를 쥐락펴락하는 여성 ‘이해리’와 그녀와 결탁해 돈을 가로채고 ‘성령의 뜻과 명령’이라며 여성들을 성추행하는 신부 ‘백진우’ 등 선(善)이라는 가면을 쓴 사람들 이면에 도사린 악의 진실을 파헤친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인 ‘해리’는 각기 다른 정체감을 지닌 인격이 한 사람 안에 둘 이상 존재해 행동을 지배하는 증상인 ‘해리성정체감장애’를 가리키는 동시에 이 소설의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공 작가가 설명했듯 “수많은 인격들이 튀어나오는 정신병적 현상을 내재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대표한다.
5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해리’ 발표한 소설가 공지영.
5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해리’ 발표한 소설가 공지영. 출판사 해냄 제공
이해리가 유력 인사들과 지역민들에게 봉침(벌침)을 놔주고 돈을 챙기거나 입양한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몇몇 장면은 ‘전주 봉침 여목사 사건’과 겹쳐 보인다. 공 작가는 “이 소설은 사실에 의거한 것이 많지만 모두 허구다. 한 두 사람을 미화하거나 모델로 삼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수집했던 실화들을 짜깁기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특정 사건에 대한 작가의 직간접적인 비판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수많은 도시에서 지방 토호와 정치인들이 형성한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약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봐왔다”면서 “작품 속 무진이라는 공간은 특정 장소를 지칭하기보다 대한민국을 압축해 놓은 장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작품 후기에 쓴 대로 대구 희망원에서 9년간 (생활인) 312명이 사망했지만 (천주교)대구대교구에서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던 일은 보도를 바탕으로 실화 그대로 다뤘다”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이해리는 SNS를 통해 의지할 가족 없이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내세워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사서 돈을 갈취한다. 진보적인 성향의 정치 활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은 백진우는 SNS를 통해 온갖 모금 활동을 진행하며 사리사욕을 채운다. 공 작가는 “21세기 들어 위선과 사기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SNS”라면서 “전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페이스북을 통해 악인들이 자기의 이미지를 어떻게 세탁하는지, 그들이 거짓말을 할 때 선의를 지닌 무구한 사람들이 어떻게 거기에 속아 넘어가는지 보여주고자 페이스북 이미지를 삽화로 책 속에 넣었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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