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하게 만들어진 중세, 정말 ‘야만의 시대’였을까

잔혹하게 만들어진 중세, 정말 ‘야만의 시대’였을까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23-10-06 00:47
업데이트 2023-10-0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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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의 몸/잭 하트넬 지음/장성주 옮김/시공아트/456쪽/3만 2000원

현대의 제도·체계 기틀 된 중세
인간의 몸, 특별·신비하게 여겨
문학·예술·건축 등에 적극 활용
머리부터 발끝까지 ‘본질’ 찾아
왜곡 안 된 실제 시대상 파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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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5년경 제작된 판화. 비너스와 비슷한 형상의 프라우 미네가 열아홉 가지 방식으로 연인의 심장을 고문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중세 시대에는 심장을 ‘몸의 대변인’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시공아트 제공
1485년경 제작된 판화. 비너스와 비슷한 형상의 프라우 미네가 열아홉 가지 방식으로 연인의 심장을 고문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중세 시대에는 심장을 ‘몸의 대변인’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시공아트 제공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는 흔히 암흑시대(Dark Age)로 묘사된다. 나병과 흑사병이 창궐하고, 마녀가 ‘발명’된 시기였다. 서양인들에겐 좀더 구체적이다. 영예로운 두 시대, 그러니까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 사이에 낀 정체되고 외떨어진 시기로 여긴다. 대략 300년에서 1500년 사이, 고통과 무지가 만연한 세상에서 가엾을 정도로 불결하게 살아가며 스멀거리는 어둠을 틈타 전쟁을 벌일 궁리만 했다는 식이다.

이는 고정관념이 낳은 산물이다. 이런 불온한 관념을 낳은 원흉이 누군지는 불분명한데, 이처럼 일그러진 중세의 실제 모습을 밝혀 보겠다고 나선 책이 ‘중세 시대의 몸’이다. 저자는 영국의 미술사학자다. 그가 중세를 분석하기 위해 프리즘으로 쓴 건 ‘몸’이다. 머리부터 시작해 감각기관, 피부, 뼈, 심장, 피, 손, 배, 생식기 그리고 발까지 저자는 인간의 몸 이곳저곳을 각 장의 제목으로 내걸고 중세 시대를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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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캐나다의 한 경매에서 팔린 중세 유럽 남성의 형상. 갈라진 머리, 구멍 뚫린 목 등 흉측한 모습이 중세 시대를 보는 현대인의 시각을 표현하는 듯하다.  시공아트 제공
2003년 캐나다의 한 경매에서 팔린 중세 유럽 남성의 형상. 갈라진 머리, 구멍 뚫린 목 등 흉측한 모습이 중세 시대를 보는 현대인의 시각을 표현하는 듯하다.
시공아트 제공
저자가 책의 출간을 위해 10년 동안이나 ‘몸’에 천착한 것은 “몸은 과거 일상생활의 본질을 이해하는 경로”라서다. 그는 “삶과 죽음을 살피다 보면 우중충한 중세 너머의 다른 이야기가 우리 눈앞에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단언한다.

예컨대 저자가 피부를 통해 드러내는 견해는 이렇다. 피부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몸의 내부 기관을 보호하는 1차 성벽이다. 한발 더 나아가 사람의 살갗, 동물 가죽 등으로 만든 양피지를 통해 당대의 출판문화를 이끌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정체성, 인종 같은 문제를 외부로 투영해 한 개인의 공적인 겉모습을 빚어내기도 한다. 한센병 같은 질병은 종종 피부보다 깊숙한 개인의 인성, 종교적 도덕성 등의 척도로 여겨졌고 피부색의 차이는 구별 짓기와 헐뜯기, 악마화 등의 주요 명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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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여성으로는 드물게 영국 가터 기사단의 일원이 됐던 앨리스 초서의 무덤 조형물. 화려한 석관 겉면 부조(왼쪽)와 달리 내부(오른쪽)는 부패해 가는 시신을 묘사했다. 시공아트 제공
중세 여성으로는 드물게 영국 가터 기사단의 일원이 됐던 앨리스 초서의 무덤 조형물. 화려한 석관 겉면 부조(왼쪽)와 달리 내부(오른쪽)는 부패해 가는 시신을 묘사했다.
시공아트 제공
제2의 피부도 생겨난다. 옷이다. 옷차림이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준다는 관념은 생전뿐 아니라 사후에도 중요했다. 이를 남용하거나 공공연하게 드러내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사는 곳이 그 사람을 말해 주듯 걸치는 옷이 자신을 드러낸다고 믿으니 말이다.

뼈는 거의 항상 죽음과 연계된다. 중세 때도 그랬다. 뼈가 마지막으로 찾아가 쉬는 곳은 극히 중요한 장소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이뤄지는 영적 교감의 현장이었다. 무덤이 거래성을 띤 추모의 현장으로 변해 가면서는 망자들의 안식처를 어디에 정하고 어떻게 꾸밀지 등 일종의 공간적 역학 관계가 서서히 생겨났다. 가난한 자, 평민, 부자, 귀족 등은 매장지부터 달랐고 특별한 경우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처럼 거대한 기념물로 발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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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어 머리를 통해 광기와 대머리가 당대의 정치 및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피고, 발에 이르러선 여행과 지도 제작에 관해 알아보는 식으로 논지를 이어 간다.

중세는 여러 면에서 현대의 각종 제도와 체계가 마련된 시기다. 중세인들은 인간의 몸을 신비하고 특별한 대상으로 보고 문학, 예술, 건축 등에 적극 활용했다. 저자는 “우리는 단순히 스스로의 비위를 맞추고 싶다는 이유로 시간상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손원천 선임기자
2023-10-0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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