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의 시작과 끝, 춤으로 푼다

왕따의 시작과 끝, 춤으로 푼다

입력 2012-05-18 00:00
수정 2012-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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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부터 한예종 무용단 정기공연

두 명, 두 명, 세 명이 무리지어 앉아 있다. 조물조물 움직이다가 한 덩어리가 되더니 하나를 밀어낸다. 튕겨나간 하나가 다시 무리로 들어가 팔을 휘젓고 고개를 까닥하며 섞이는가 싶더니 또 하나를 떠밀었다. 다른 하나가 잡아끌어 무리에 섞였다. 내치면서도 안으로 끌어들이기를 반복하는 무리에서 벗어나고, 달아나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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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의 내밀한 이야기를 무용으로 풀어낸 김삼진·로레타 리빙스턴 교수의 ‘촉’. 한예종 제공
‘왕따’의 내밀한 이야기를 무용으로 풀어낸 김삼진·로레타 리빙스턴 교수의 ‘촉’.
한예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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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슐레바인 교수의 ‘아웃캐스트’. 한예종 제공
안드레아 슐레바인 교수의 ‘아웃캐스트’.
한예종 제공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길래.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나라도 사라졌으면 좋겠어….” 여성의 대사는 귀에 들릴 듯 말 듯 속삭이는 데도 마치 절규를 하는 듯 애처롭다.

집단따돌림(왕따)의 근원과 현실을 표현한 무용작 ‘촉’의 일부분이다. 연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 속에서는 개개의 특징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누군가는 왕따를 당한다. 다르다거나 이상하다는 식의 논리적인 이유 없이, 본능적으로 다른 것을 떠민다.

김삼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교수와 함께 ‘촉’을 안무한 로레타 리빙스턴 미국 캘리포니아대 무용과 부교수는 “왕따는 어디에서 시작됐는가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고 주변을 관찰했다.”면서 “단순히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물세계에도 있는,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는 그 시작점을 담아봤다.”고 설명했다.

‘촉’처럼, 왕따의 원인과 과정, 현상 등을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낸 5개 무용작이 18, 19일 서울 석관동 한예종 예술극장에 오른다. 한예종 개교 20주년을 기념한 제29회 케이아츠(K-Arts) 무용단 정기공연이다.

총연출을 맡은 김삼진 교수는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를 아이들이 자살을 선택하게 만드는 왕따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충격적인가. 하지만 그런 문제가 이제는 마치 일상처럼 돼버렸다.”면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뿐만 아니라 왕따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풀어봤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는 것도, 사회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것도, 모두 무용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5개 작품 모두 개성이 넘친다. 안무가 손가예의 ‘그림자 밟기’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착안해 왕따의 근원을 권력욕에서 찾았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는 막연하게 권력욕을 찾는 세상이다. 어른들은 권력사슬을 만들고, 아이들은 그 힘의 분배를 모방한다. 약자는 허덕이고, 강자는 당당한 권력사슬 속에서 ‘당신은 어디쯤인가.’라고 묻는다.

왕따 문제를 명랑하게 풀어내기도 한다. 안무가 김정수의 ‘나는 뛰어내리기 선수이다’에서 여성은 끊임없이 어딘가에서 뛰어내린다. 마치 계속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 같긴 한데 다이빙으로, 스키점프로, 또 번지점프로 모습을 바꾸면서 정체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놀라다가 냉담해지더니 삿대질을 하며 감정변화를 일으킨다.

해외 안무가도 참여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안드레아 슐레바인 초빙교수는 왕따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구조적으로 파악한 ‘아웃캐스트’(Outcast)를 선보인다. 희생양을 향한 집단 공격성과 압박, 조종, 암묵적 동의와 방관 등 다양한 현실을 담았다. 무료 초대 공연. (02)746-9360.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2012-05-1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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