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는 것이 우리 인생, 웃음꽃 필 날 기다리며…

피고 지는 것이 우리 인생, 웃음꽃 필 날 기다리며…

박윤슬 기자
입력 2020-05-08 00:52
업데이트 2020-05-08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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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다큐] 가정의 달 모처럼 분주한 화훼농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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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 의림원에서 한 농장 관계자가 카네이션을 정리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 의림원에서 한 농장 관계자가 카네이션을 정리하고 있다.
로나19 장기화로 경제 곳곳이 신음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 해 매출이 성수기 환경에 좌우되는 화훼농가는 직격탄을 맞은 시장이다. 졸업식과 입학식, 결혼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대부분 취소되거나 간소하게 치러진 탓이다. 경기 남부 지역의 최대 화훼 재배 지역인 용인시 남사화훼단지를 찾아 농가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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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시장에서 유찰돼 반품된 수국이 시들어 가고 있다.
경매시장에서 유찰돼 반품된 수국이 시들어 가고 있다.
이른 아침의 수국농장. 꽃봉오리가 채 올라오지 않은 푸릇한 수국 화분 수백여개가 트럭에 실리고 있었다. 본래는 꽃이 핀 분재 형태로 출고됐지만 최근 몇 달간 경매시장에 간 꽃들은 대부분 유찰돼 그대로 반품된 처지다. 그렇게 돌아온 꽃들은 상품 가치가 떨어져 처리하는 것만도 큰 일. 처치 곤란한 천덕꾸러기로 버려지느니 싼값에라도 조경용으로 대량 판매하는 것이 그나마 해결 방법인 것이다. 일부는 트럭으로 실려 나가지만 농장 곳곳엔 출하도 못한 채 엎어 버린 화분이 군데군데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농장주 입장에서는 수입재여서 가격이 만만찮은 용토라도 건져 재활용해 보고 싶은 심산일밖에. 본래 도매만 취급했지만 반품된 수국을 소매로라도 팔아 볼까 싶어 농장 주인은 마른 잎을 정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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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 의림원에서 농장 관계자가 카네이션 출하 작업을 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 의림원에서 농장 관계자가 카네이션 출하 작업을 하고 있다.
인근 카네이션 농장도 가정의 달을 맞아 모처럼 분주해졌다. 비닐하우스 가득 빨갛게 꽃을 피운 카네이션 출하에 한창이다. 일손이 모자라 먼 데서 가까운 데서 지인들이 다 동원됐다. 관광버스업을 하던 홍성덕(58)씨도 함께했다. 코로나19는 국내 관광업에도 큰 해를 끼쳤다. 한동안 일거리가 전혀 없었다는 홍씨는 직원들을 데리고 합류했다. 어차피 일감이 없으니 농장 일이라도 거들겠다는 것이다. 농장 주인은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잠도 못 자고 정성 들여 키운 꽃들이 빛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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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하양농장 대표 김원일씨가 장미를 따고 있다.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하양농장 대표 김원일씨가 장미를 따고 있다.
10여종의 장미를 재배하는 화성시의 한 농장. 농장주 김원일(61)씨는 “장미는 연중 재배하고 판매할 수 있는데도 코로나19 파동을 이길 수 없어 간신히 본전치기”라고 했다. 유동 인구가 줄어 가격이 3분의1 가까이 떨어진 데다 연료비까지 올라 수지가 맞지 않았다. 꽃은 온도, 습도 등의 관리 유지비와 인건비가 한 달에만 수백, 수천만원씩 들어가기에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김씨는 “팔면 팔수록 손해여도 피고 지는 것이 꽃의 순리니 그저 시장에 내보낼 도리밖에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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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화훼공판장에서 열린 절화 경매에서 전광판에 유찰된 거래가 표시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화훼공판장에서 열린 절화 경매에서 전광판에 유찰된 거래가 표시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1인당 연간 화훼 소비액은 1만 1888원이다. 그동안 국내 꽃시장은 기형적으로 발전했다. 전체 꽃 소비의 약 80%가 경조사용. 꽃은 특별한 날에 누군가로부터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크다. 최근 코로나19로 어려워진 화훼농가를 돕고자 다양한 곳에서 꽃을 기부하고 나눠 주는 행사가 진행됐다. 이런 움직임은 다행스럽지만 행여나 ‘꽃은 받는 것’이라는 편견을 심어 주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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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 용인석화화훼유통센터에서 관계자가 도매시장과 대형마트로 갈 꽃들을 정리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 용인석화화훼유통센터에서 관계자가 도매시장과 대형마트로 갈 꽃들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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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양재동 aT화훼공판장에서 열린 절화 경매 시작에 앞서 중도매인이 경매에 부쳐질 꽃들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화훼공판장에서 열린 절화 경매 시작에 앞서 중도매인이 경매에 부쳐질 꽃들을 살펴보고 있다.
화훼유통업을 하는 권영석씨는 “태풍이든 전염병이든 위기는 다시 올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위기를 견뎌 내는 실험의 장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민간육종가연합회 임육택 회장은 “얼마 전 대형마트에서 만난 손님이 ‘놀러도 못 나가는데 집에서 꽃이라도 봐야지’ 하더라. 맞는 말이다.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꽃만 한 것이 세상에 또 없다”며 웃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두 고단하고 팍팍해진 이 시간. 오늘 문득 나를 위한 꽃 한 다발, 어떨까.

글 사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2020-05-0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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