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회장 일행 訪北, 무엇을 남겼나

구글 회장 일행 訪北, 무엇을 남겼나

입력 2013-01-10 00:00
수정 2013-01-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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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우려 전달” vs “개인 관광”…평가 엇갈려

북한 인민대학습당의 김일성 주석 석고상과 그 옆에 선 에릭 슈미츠 구글 회장을 한 앵글에 담은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에 ‘인터넷 황제’가 들어간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만큼 슈미트 회장과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 일행의 방북은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3박4일간의 방북 성과를 두고는 엇갈린 평가 나온다.

리처드슨 전 지사는 10일 중국 베이징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자신들이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 등 관리들을 만나 탄도미사일 발사와 향후 이뤄질 수 있는 핵실험의 모라토리엄(유예)을 촉구했다고 주장했다.

또 슈미트 회장은 “이번 방북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터넷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개인적 방문이었다”며 “북한의 (IT) 기술은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북한에 억류 중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씨를 만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우려 속에 ‘개인적인 방문’임을 부각하며 방북을 강행한 슈미트 회장 일행은 일단 현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입장을 북한에 전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슈미트 회장 일행의 방북 일정을 살펴보면 지난 8일 외무성 관리를 만난 것 이외에는 평범한 북한 참관단과 같은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7일 저녁 평양에 도착한 슈미트·리처드슨 일행은 다음날 북한 최고 명문인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해 이 대학 학생들이 검색엔진 구글과 개방형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활용해 자료를 검색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또 9일에는 북한에서 가장 큰 도서관인 인민대학습당과 조선컴퓨터센터 등을 참관했으며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의 큰 관심 속에 슈미트 회장이 방북했지만 개인 관광에 그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러한 평범한 일정 때문에 이번 방북이 어느 쪽의 수요에 의해 성사됐는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막후에서 이번 방북을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진 리처드슨 전 주지사의 고문 토니 남궁씨는 지난 7일 베이징공항에서 슈미트 일행과 함께 평양으로 출발하기 전 취재진에게 “약 두 달 전 북한과 접촉해 북한 외무성의 초청으로 방북 길에 오르게 됐다”고 밝혔다.

북한의 초청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에 앞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발사 이후 쏟아질 국제적 비난 등을 염두에 둔 ‘보여주기용’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 당국이 슈미트 회장 초청을 통해 국제사회와 관계를 정상적으로 가져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고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매체들은 이번 슈미트 일행의 방북과 관련한 보도를 내보내면서 ‘초청’이란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이들의 평양 도착 소식을 단 한 줄로 처리했다. 북한이 구글의 협력이나 지원을 기대하고 슈미트 회장을 초청했다고 보기에는 북한 매체의 보도행태가 너무 성의없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번 방북은 슈미트 회장과 리처드슨 전 주지사의 요청으로 성사된 개인여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이성윤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지난 9일 미국의소리(VOA)방송에 “리처드슨이 2010년 12월 방북 때 자신의 북한 방문으로 전쟁이 억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는 걸 보면 자신이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이번 방문이 리처드슨 전 주지사의 ‘공명심’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개인 목적의 방북임을 강조했던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10일 베이징공항에 도착해 가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신들이 북한에 핵·미사일 시험 중단을 촉구했다고 밝힌 것도 너무 나간 발언이라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이번 방북은 세계의 인터넷 황제로 볼 수 있는 구글의 슈미트 회장이 인터넷 소외국인 북한의 정보기술(IT)산업 인프라 실태를 돌아보고 연계 가능성을 살핀 데 무게가 실린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종합대학의 전자도서관, 조선컴퓨터센터 등을 방문해 인트라넷과 인터넷 연결 상황을 직접 보고 사용자의 모습을 관찰하며 관리자의 설명을 청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이 슈미트·리처드슨 일행의 방북을 장거리로켓 발사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상황을 타개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평양에서 대학을 다니다 탈북한 김모 씨는 “북한의 일반 대학생이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며 “슈미트 회장이 김일성대를 방문했을 때 대학생이 구글과 위키피디아를 활용해 자료를 검색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북한 당국의 철저한 연출”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이는 구글 회장에게 일반 대학생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습과 평양에서 컴퓨터가 대중화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김정은 체제가 개방에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미국과 국제사회에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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