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자살사건’ 한달‥아직도 겉도는 경찰 대책

‘대구 자살사건’ 한달‥아직도 겉도는 경찰 대책

입력 2012-01-17 00:00
수정 2012-01-17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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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20일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이 터진 지 한달 가까이 지났다. 하지만 학교폭력 대처의 ‘제1선’에 서야 할 경찰은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조현오 경찰청장은 지난 2일 시무식에서 ‘학교폭력 근절’을 강력히 지시했다. 이튿날에는 전국 16개 지방경찰청을 연결한 화상회의를 주재, 학교폭력에 적극 개입할 것을 재차 주문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실효성이 기대될 만큼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 실행하고 있는 지방경찰청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경찰청장의 지시도 먹히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충북경찰청이 다른 곳들보다는 활발한 분위기지만 지금까지 나온 대책이란 것들이 ‘피해신고함 설치’, ‘전담경찰 지정’ 등 하나같이 ‘재탕’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발 느린 경찰‥무대책이 대책?

충북도내 경찰의 학교폭력 대책을 뜯어보면 전문가들의 지적이 결코 ‘평가절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충북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적극적인 편인데도 대부분 대책이라고 하기조치 낯 뜨거운 것들이다.

제천경찰서와 단양경찰서가 마련한 학교폭력 피해신고함 설치가 대표적이다.

‘사춘기’ 중학생들의 학교폭력이 가장 심각하다고 보고 관내 중학교마다 1개씩 신고함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신고함에 접수된 피해사례를 수시로 챙겨 교육청에 통보하거나 직접 수사한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당국의 지시로 전국의 모든 초ㆍ중ㆍ고에는 지금도 신고함이 1개씩 설치돼 있다. 경찰이 설치하겠다는 신고함도 이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밖에 학교별로 담당 경찰을 1명씩 지정한다는 진천경찰서, 관내 모든 지구대와 파출소에 ‘부모사랑방’을 설치해 한달에 2∼3차례 학부모로부터 직접 학교폭력에 관한 얘기를 듣는다는 음성경찰서의 대책도 근본적으로 효과가 의문시된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단양경찰서는 피해신고함 외에 학교폭력 신고를 담당할 ‘명예경찰소년단’을 초ㆍ중ㆍ고 학급별로 1∼2명씩 지정한다는 구상을 내놓았지만 벌써부터 역효과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충북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아직 학교폭력 대책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경찰관서를 찾기 어렵다.

학교 밖 청소년 취약 지역에 피해신고함을 설치한다는 경기도 의정부경찰서의 대책이 그나마 눈길을 끈다. 이 경찰서는 관내에서 청소년들이 많이 출입하는 11곳을 골라 피해신고함을 설치하기로 했지만 사후 관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피해신고함 지금도 있다”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비판하는 대책이 ‘피해신고함’이다.

충북 청주ㆍ청원지역 교사들로 구성된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의 문재현 소장은 “현재 학교마다 설치된 신고함이 거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쪽지를 넣는 순간 학교 내에 소문이 퍼지기 때문”이라면서 “‘일진’(폭력학생)이 학생들을 장악하고 온갖 비행을 주도하는 현실을 도외시하니까 이처럼 구태의연한 대책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의 모든 초ㆍ중ㆍ고에는 이미 ‘학교폭력 피해신고함’이 설치돼 있지만 신고함을 이용한 학생이 ‘고자질쟁이’로 낙인 찍혀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라는 것이 문 소장의 설명이다.

진천경찰서의 ‘학교별 담당경찰 지정’ 대책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부산 동의대학교 최종술(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지금도 지구대나 파출소 직원들이 학교 주변을 순찰하고 학교 근처에 ‘순찰함’도 설치돼 있다”면서 “학교별 담당 지정제는 현행 순찰 제도를 조금 바꾼 것에 불과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치안업무 수요도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에서 경찰관 개개인에게 가외로 전담 학교를 지정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이것이야말로 하는 척하다 마는 전시성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학교폭력 사례를 직접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는 ‘명예경찰소년단’도 효과는 고사하고 되레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현 소장은 “학교 선도부에 ‘일진’이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않아 자칫 ‘일진’에게 완장을 주는 꼴이 될 수 있다”면서 “선량한 일반 학생한테 ‘명예경찰’을 시키면 집단따돌림을 받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주먹 안쓰는 ‘괴롭히기’는 어떻게?

경찰이 현재 생각하는 정도의 대책으로는 ‘집단따돌림’이나 ‘심부름 시키기’ 같은 교묘한 괴롭히기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문 소장은 “가해학생들이 ‘장난이었다’고 변명하며 빠져나가곤 하는 비폭력적인 괴롭히기도 심각한 문제”라면서 “힘없는 학생들을 정말로 힘들게 하는 지능적인 ‘일진’의 폐해에 대해서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술 교수도 “폭력은 물리력, 강제력이 수반되는 처벌로 대응해야 하지만 ‘비행’은 선도나 교화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라면서 “경찰이 학교 폭력과 비행에 대한 개념부터 정립하고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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