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끊긴 ‘노인 복지시설’…쓸쓸한 설 명절

발길 끊긴 ‘노인 복지시설’…쓸쓸한 설 명절

입력 2014-01-30 00:00
수정 2014-01-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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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설 아니었어? 으응… 설이 지났지 아마”

설 명절을 앞둔 지난 29일 오후 강원 춘천시 동내면의 한 노인복지시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박모(74·여) 할머니는 손님이 반가운 듯 이가 빠진 잇몸을 드러내며 환히 웃어 보였다.

아들 둘을 학교 선생으로 키운 게 박 할머니 평생의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남편과 사별하고 나서 시설에 들어온 지 만 3년. 자식들의 발길은 차차 뜸해졌다.

”그때 아들네가 명절을 쇠러 집에 왔었는데 나를 이리로 데려오더라고…”

할머니는 집으로 찾아온 자식들을 아랫목이 앉히고 제 손으로 이것저것 해 먹이던 설 명절이 그립다.

박 할머니는 “집에 가면 근처에 경로당도 있고 (명절이면) 같이 밥도 해먹고 더 낫다”면서 “이번에 자식들이 오면 집에 데려다 달라고, 아니면 차라리 물속에 집어넣으라고 얘기할 거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시설에는 85명의 노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명절을 앞두고 가족들과 외출이나 외박을 나간 노인은 1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휴게실에 혼자 앉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던 한 80대 할머니는 “설이 이미 지나지 않았느냐”고 연거푸 물으며, “(찾아올 사람이 없으니) 다들 방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다”고 쓸쓸히 말했다.

방문객들의 발길만 끊긴 것이 아니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후원·기부까지 줄어 강원도 내 노인복지시설들은 어느 때보다 힘겨운 명절을 맞고 있다.

실제로 박 할머니가 거주하는 시설은 매년 후원금이 줄고 있는데 특히 올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가에서 요양급여를 통해 일부 금전 지원을 하기 시작하면서 기업이나 단체, 기관 후원금은 거의 사라졌고, 종교기관을 통해 연결된 소액 기부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단체나 도심 지역 복지시설은 고정 후원자들이 있어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횡성군 우천면 상하가리의 한 노인복지시설은 올해 설 후원금은커녕 지난해 12월 말 기준 최근 1년 기부액이 100만 원이 채 안 된다.

형편을 아는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기부하거나 개인이 상품권으로 보내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정이 좋으면 가족 없이 홀로 남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합동 차례나 명절 행사를 지내기도 하겠지만, 올해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

노인 8명이 생활하는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의 한 노인 복지시설은 올해 후원금은 물론 생필품 기부도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최근 일부 노인복지시설의 열악한 시설과 서비스를 고발하는 기사나 요양급여를 허위청구해 횡령한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후원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게 시설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인제군 남면 어론리의 한 노인복지시설 관계자 최모(42)씨는 “어르신들을 모시는 대부분 시설이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그나마 봉사 점수를 얻으려고 방문하는 중·고등학생들이 어르신들에게 위안이 돼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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