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니 ‘골치’, 안 가면 ‘눈치’…“설 생각에 잠이 안와요”

가자니 ‘골치’, 안 가면 ‘눈치’…“설 생각에 잠이 안와요”

입력 2017-01-26 11:05
업데이트 2017-01-2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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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장만·질문공세에 남녀 모두 ‘명절 스트레스’

누구나 설에 바라는 장면은 가족과 친지가 함께 음식을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이다.

모두가 이처럼 행복하고 단란한 설 명절을 바라고 이를 위해 적잖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뜻한 대로 이루기가 쉽지 않고 오히려 ‘명절 증후군이나 스트레스’라는 달갑지 않은 현실에 부닥치기 일쑤다.

며느리들은 시댁 방문과 음식 준비에 걱정이 앞서고, 남편들은 그런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 장시간 운전에 걱정이 앞선다. 이를 안쓰러워하는 부모는 왕래를 말리거나 제사를 없애기도 한다.

자녀들도 취업과 결혼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다.

이 같은 스트레스는 자칫 가정불화나 주먹질로 이어져 명절을 전후해 폭력신고가 평소보다 늘어난다

◇ 남편은 ‘남의 편’…주부들 “해마다 명절이 두렵다”

둘째를 임신한 서울에 사는 A(35·여)씨는 설 연휴를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다.

불러오는 배를 안고 4살배기 첫째와 함께 전남 장성과 광주에 있는 시댁과 친정을 오갈 일이 걱정이다.

A씨는 “남편이 날짜를 조정하거나 제수용 음식을 사자고 시댁에 건의하기를 바랐는데 ‘올해도 꼭 가야 한다’는 대답만 해서 정말 ‘남의 편’인가 싶다”고 원망스러워했다.

전북 군산에 사는 공무원 B(44·여)씨는 명절 당일 당직을 자청했다.

추운 시골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음식 준비와 식구 수발까지 하고 오면 몸살에 걸리기 일쑤여서 차라리 당직을 핑계 삼아 가지 않겠다는 요량이다.

B 씨 주변에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여직원이 적지 않아 사다리를 타 당직자를 정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 남성도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려

명절증후군은 여성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남편들도 장시간 운전, 예민해진 아내 눈치에 적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직장 때문에 설에 처가 방문이 어려운 울산의 C(36)씨는 장모님에게 30만원을 미리 부쳤다.

자신은 가까이 사는 부모를 잠깐이라도 찾아뵐 수 있지만, 매번 친정을 가지 못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다.

C씨는 “명절 때마다 아내 눈치가 보여 난감하다”며 차라리 명절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들처럼 명절이면 시댁과 처가를 오가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는 아내와 남편들이 차라리 근무를 자청하거나 아예 여행을 가기도 한다.

이런 현실을 아는 일부 부모는 명절 때 왕래를 말리거나 집안일 부담을 덜어주기도 한다.

경북 경주에 사는 D(66)씨는 두 아들에게 앞으로 설 명절에 오지 말라고 했다.

차량정체를 참아가며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내는 등의 격식을 차리지 말자는 취지다.

D씨는 “운전하고 과식에 과음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가는 명절은 옛말”이라며 자신부터 명절에 얽매이지 않고 여행을 다니겠다고 공언했다.

부산시 남구에 사는 E(67·여)씨는 며느리에게 몇 년 전부터 집안일을 시키지 않는다. 제수 구매, 생선 굽기, 청소 등은 남편(71)이 한다.

E씨는 “며느리의 명절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이라며 일 년에 세 번 있는 집안 제사도 없앨 계획이라고 밝혔다.

◇ “취직했냐, 결혼 안 하나”…불편한 질문은 금물

젊은이들에게도 설 명절이 즐겁지 못한 경우가 많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하지 못한 A(26)씨는 다가오는 설이 걱정이다. 취직했냐고 물어대는 친지와 지인들에게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런 이유로 아예 설에 집 대신 도서관에 가겠다는 친구도 있다고 그는 전했다.

미혼의 군산시 공무원 G(35)씨는 ‘결혼’얘기가 나올까 조마조마하다. 차라리 외국여행을 갈까 고민 중이다.

전남 순천의 직장인 H(41)씨는 설에는 아예 아내를 여행 보내고 홀로 본가에 다녀올 예정이다.

그는 “주변에서 아이 소식을 물을 때면 나는 물론 아내에게도 큰 스트레스여서 아내에게 고육책으로 아예 일본여행을 가라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제발 명절에 불편한 질문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 가정불화·폭력 증가…“대화와 감사의 표현이 필요”

이처럼 여러모로 ‘불편한 명절’을 보내고 나면 가정불화나 폭력이 증가하는 후유증이 크다.

직장인 G(40)씨는 명절에 아내와 엄마 사이에서 눈치 볼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아내가 큰집 맏며느리라 유독 일이 많은 데다 부엌일이 서툴러 시어머니 잔소리를 들어, 명절 후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곤 한다.

명절 연휴에는 가정 폭력 신고가 평소보다 1.5∼2배 증가한다.

경찰청의 ‘명절 연휴 가정폭력 112 신고현황’에 따르면 2014년 설 연휴에 3천138건, 2014년 추석 연휴에 4천599건, 2015년 설 연휴 4천508건, 2015년 추석 연휴 3천983건의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됐다.

지난해에는 신고 건수가 설 연휴 4천457건, 추석 연휴에는 6천165건으로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명절 기간 지나친 스트레스와 음주, 불협화음 등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며 가족 간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 화성의 김모(52)씨는 지난해 추석에 형제들과 종교 문제로 말싸움을 벌인 뒤 왕래조차 하지 않는다.

3남 2녀 중 막내인 자신이 매년 제사를 해왔는데 교회를 다니는 형들과 형수들이 “제사를 지내지 말자”고 말해 밥상을 엎고 형들과 멱살잡이까지 했다.

2014년 추석에는 명절 때 고향에 잘 내려오지 않는 동생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흉기로 동생 허벅지를 찌른 형이 검거되기도 했다.

최태규 분당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족이기 때문에 견뎌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아내와 충분한 대화로 서로의 고충과 할 일을 상의하는 것이 좋다”며 “수고하고 애쓰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감사의 표현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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