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성폭력 피해 알고도 방치한 감독과 구청·시체육회 직원들

선수 성폭력 피해 알고도 방치한 감독과 구청·시체육회 직원들

오세진 기자
입력 2020-06-04 12:00
업데이트 2020-06-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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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사실 인지하고도 3개월 동안 방치
가해 선수들 사건 후에도 전국대회 출전
시체육회 직원 “출전 문제 없다”고 판단

실업팀 운동선수들의 성폭력·폭력 가해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알고도 수사기관에 신고하거나 자체 조사를 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실업팀 감독과 소속 구청·시체육회 담당 직원들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징계를 권고했다.

4일 인권위에 따르면 대학 선수인 피해자는 지난해 5월부터 A광역시 B구청 운동실업팀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실업팀 선수들로부터 성추행과 괴롭힘 등을 당했다며 실업팀 감독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후 실업팀 감독은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A광역시체육회 담당 직원과 B구청 담당 직원에게 알렸다. 하지만 피해자는 지난해 11월 구청이 가해 혐의 선수들을 사직 처리하기 전까지 실업팀 감독과 구청·시체육회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에서 실업팀 감독은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듣고 바로 가해 혐의 선수들을 소집해 상황을 들었으며 구청·시체육회 담당 직원들에게 유선으로 상황을 알렸다고 진술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가해 혐의 선수들의 전국체육대회 출전 가능 여부를 물었을 때 시체육회 담당 직원이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면서 “출전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설명했다.

구청 담당 직원은 피해사실을 전해 듣고도 곧바로 조사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수사기관으로부터 사건 신고 및 통보를 받은 사실이 없고, 양자(피해자와 가해 혐의 선수들) 의견이 상충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체육회 담당 직원은 “가해 혐의 선수들이 구청 운동팀 소속이니 구청에 말해 해결하라고 (실업팀 감독에게) 말했다”면서 “당시 전달받은 내용으로는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실업팀 감독과 담당 직원들 징계” 권고

하지만 인권위는 실업팀 감독과 구청·시체육회 담당 직원들이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실업팀 감독은 피해자와 가해 혐의 선수 모두의 지도자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사실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이 어느 한 편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구청·시체육회 담당자에게 단순히 알리는 것 외에 피해사실 조사 등을 하거나 관계기관에 요구하지 않았다. 이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니라, 스포츠계 지도자로서 성폭력·폭력으로부터 선수를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한 것”이라고 밝혔다.

구청 담당 직원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이 실업팀 관리규정에는 ‘소속 선수가 품위를 손상하거나 복무규정을 위반했을 때 구청장이 해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구청은 소속 선수의 폭력·성폭력 등 혐의가 있다면 즉시 조사를 진행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서 “사건 인지 후 약 3개월 뒤에야 가해 혐의 선수들을 사직 처리한 것도 가해 혐의 선수들이 전국체육대회 등 주요 대회 일정을 모두 마친 후에 피해자와의 소송 등을 이유로 스스로 낸 사표를 수리한 것에 불과하다. 소속기관으로서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구제 조치를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어 “시체육회는 관내 선수들의 폭력·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사 및 징계 권한을 갖고 있으므로 담당 직원은 피해사실을 인지한 후 조사를 할 수 있도록 관련 부서에 알리거나 직접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면서 “시체육회 담당 직원은 피해자에게 사실 확인이나 신고 안내를 위한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권위는 구청·시체육회 담당 직원과 실업팀 감독에 대한 징계를 각각 소속 구청·시체육회, 대한체육회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특히 구청 담당 직원으로부터 구두로 보고를 받고도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은 소속 부서 과장에 대해서도 징계할 것을 권고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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