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19년 할아버지가 기부했던 300만원.
울산시 중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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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울산시 중구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 병영1동 행정복지센터로 국방색 점퍼와 짙은 색 바지를 입은 남루한 모습의 한 할아버지(77)가 들어섰다.
왼손에 검은 장갑을 낀 이 할아버지는 곧바로 기초생활수급 담당 공무원에게 다가와 오른손으로 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내 내밀었다.
오만원권 40장, 만원권 100장 등 모두 300만원이었다. 꼬깃꼬깃한 지폐 뭉치는 정성스럽게 끈으로 묶여 있었다.
할아버지는 “연말을 맞아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담당 공무원은 그가 누군지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이 담당하는 기초생활수급자였기 때문이다.
참전유공자인 데다 왼손이 절단된 장애인인 할아버지는 그 동안 받은 수당과 장애인연금 일부를 모아 내놓은 것이었다.
그는 “평소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았고, 항상 주위의 관심과 도움을 받은 것이 고마웠다”면서 “혼자 살다보니 돈 쓸 일이 많이 없어 조금씩 모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보기에 큰돈은 아닐 수 있겠지만 내 마음인 만큼 잘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할아버지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에도 300만원을 기부했고, 그 돈은 의료 지원이 필요한 지역 내 독거노인과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등에게 전달됐다.
올해 기부금은 저소득 예비 대학생 가정에 노트북 6대를 후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그는 “남들이 아는 것이 부담스러우니 내 얼굴이 절대 알려지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해마다 꼭 건네는 당부였다.
담당 공무원은 “할아버지는 보증금 100만원짜리 집에서 사시면서 옷 사 입을 돈, 음식 사 먹을 돈을 아껴서 기부해주셨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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